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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급사 임금체불까지 원도급사 ‘덤터기’…相生 역효과
기사입력 2018-03-28 06:00:19.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건설산업 위협하는 ‘왝더독 정책’ 난무 ③하도급자 눈치보는 원도급자

광주ㆍ전남 지역의 A건설사는 최근 공공공사 입찰에 나섰다가 뜻밖의 항목에서 평가 점수가 깎였다. 2∼3년 전 함께 일했던 하도급자가 임금 체불로 고용노동부의 명단 공개 대상이 되면서 최대 0.2점인 ‘근로기준법 준수’ 가점이 깎인 것이다.

현행 종합심사낙찰제 세부 심사기준을 보면 최대 2점의 가점을 주는 ‘사회적 책임’ 가운데 근로기준법 준수 항목은 최근 3년간 입찰자(종합건설사)는 물론이고 하수급인(전문건설사)까지 임금체불 명단공개 대상 여부를 따진다. A사 임원은 “제3의 공사에서 발생한 하도급사의 임금체불 때문에 우리 회사의 입찰 가점이 깎인다니 울화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바야흐로 원도급자가 하도급자 눈치를 봐야 하는 시대다. 일부에선 원ㆍ하도급 관계가 ‘상생’을 넘어 ‘역전’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건설사 외주 담당자들 사이에선 하도급자와의 관계를 ‘적과의 동침’이라고 표현한다. 과거엔 오래도록 함께 일하는 협력 파트너였지만 지금은 언제든 등을 질 수 있는 시한폭탄이라는 것이다.

하도급 리스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건설현장 소장은 교체대상 1순위다. 일단 하도급 분쟁이 발생하면 공정거래위원회의 강도 높은 조사ㆍ제재는 물론이고 검ㆍ경찰에 회사 임원들이 줄줄이 불려간다.

이승규 건설외주협의회 회장(쌍용건설)은 “최근 공공공사의 박한 공사비 탓에 손해가 커지면서 원ㆍ하도급사 간 분쟁이 급증하고 있다”며 “건축은 그나마 낫지만 토목분야에선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 중견건설사 임원은 “정부와 정치권은 원ㆍ하도급사 간 상생을 위한다면서 각종 제도를 쏟아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원ㆍ하도급사 관계는 갈수록 상생과 멀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원도급자 책임만 늘리는 정책ㆍ입법

정부는 원도급자인 종합건설사의 책임만 계속 높여가고 있다. 심지어 하도급업체의 불법 노동행위에 대해 원도급자에게 벌점을 지우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벌점이 쌓이면 과태료와 과징금 등 행정처분 대상이 된다.

건설 하도급업체가 근로자에 대한 노동법규 위반 등 불법행위를 하면 원도급 건설사에 벌점을 주겠다는 것이다. 원도급자에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도록 유도한다는 취지다.

국회에는 이미 관련 법안이 제출돼 있다.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월 건설현장의 불법 노동행위에 대해 원도급사에 벌점을 부과할 수 있는 근거를 담은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국토부는 법 통과에 대비해 구체적 벌점 부과 기준과 함께 누적된 벌점에 따라 가하는 과태료와 과징금 기준 등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20대 국회에서만 하도급 관련 주요 발의 법안이 30여건에 달한다. 하나같이 원ㆍ하도급자 간 상생보다 갈등을 촉발하고 법치주의에 역행하는 법안들이다.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민간인에게 준사법적 권한을 부여하는 하도급감독관제를 신설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하도급 대금 지급기일을 대폭 단축하거나, 손해의 입증책임을 소송을 제기한 하도급자가 아닌 원도급자에게 떠넘기려는 ‘한국형 디스커버리제도’를 담은 법안도 있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정부와 발주처가 적정 공사비 확보에는 눈을 감은 채 이로 인해 발생하는 하도급 관련 문제를 모두 원도급자에 전가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릇된 시각이 낳은 하도급 규제

전문가들은 원도급자 부담만 키우는 정책들이 건설 하도급에 대한 그릇된 시각에서 출발한다고 지적했다.

전영준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원도급=대기업’, ‘하도급=중소기업’과 ‘영업이익의 원도급자 독식’이라는 두 가지 오해에서 정부 정책이 나온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2015년 기준으로 종합건설업체의 98.4%, 전문건설업체의 99.9%가 중소기업이다. 또 2016년 종합건설업체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4.5%로, 전문건설업체(4.6%)보다 더 낮다.

정부가 지난 20년간 무분별한 하도급 규제를 쏟아내는 동안 정치권도 관련 입법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15대(1996∼2000년) 때 3건에 불과했던 건설하도급 규제 법안이 19대(2012∼2016년)에는 73건으로 24배나 늘었고, 20대 국회에선 2년 만에 44건이 발의됐다. 지금 추세라면 20대에서만 역대 최다인 85건의 건설하도급 규제 법안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 부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 규제당국인 국토부와 경쟁당국인 공정위 간 협의절차를 강화하고, 중장기적으론 건설하도급 관련 규제법령을 일원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처럼 국토부가 건설산업의 발전과 원ㆍ하도급자 간 진정한 상생의 모델에 관심이 있는지 궁금하다”며 “이런 정책기조라면 하도급법에 맞서 원도급법을 만들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김태형기자 k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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