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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하코스
기사입력 2019-02-20 11:40:48.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하코스’는 45년도 더 지난 대학 1학년 어느 해 가을, 공부를 위해 결성된 동아리 이름으로 ‘하얀 코스모스’의 약칭이다. 당시 회원은 전산학과 1학년 새내기들로 남학생 여섯, 여학생 두 명 등 여덟 명이 전부였다. 교정 벤치에 모여 동아리 이름 문제를 놓고 씨름하던 중, 누군가가 담장 주위에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를 가리키며, ‘하얀 코스모스’가 어떻겠냐고 제안해 만장일치로 동아리 이름으로 채택되었다. 그런데 우연히 헤아려 본 하얀 코스모스 잎은 여덟 잎, 회원도 여덟 명, 이런 우연의 일치가….

당시는 우리나라 전체가 컴퓨터 도입 초창기였기 때문에 전공 과목들이 모두 생소하고 어려웠다. 한글판 교재마저 아직 개발되지 않아 많은 과목을 원서로 공부해야 했다. 이 때문에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런 까닭에 시험 때마다 과목을 분담해 번역을 해와 서로 교환해 가며 시험 준비를 하기도 했다.

‘통기타, 생맥주, 청바지’가 청년문화로 대변되던 70년대 초, 동아리 활동은 나름 즐거웠다. 방과 후에는 가끔 명동까지 진출해 밤 늦게까지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그런데 안주가 비싸 밖에서 미리 안주를 몰래 사 가 먹다, 웨이터에게 들켜 혼나기도 했다. 등산은 물론 연극 구경, 세미나에 모두 함께 다녔다. 그해 겨울방학을 맞아 교수님들께 양말을 팔아 남은 수익금으로 양로원을 방문, 어르신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기도 했다.

나는 입대로 인해 동아리를 떠나야 했다. 그리고 다른 남학생들 역시 차례차례 입대하면서 동아리는 자연스럽게 해체됐다. 전역 후 복학했지만, 여학생들은 이미 졸업해 학교를 떠났고, 남학생들은 아직 군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남학생들도 졸업과 동시에 각자의 길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다만 나를 포함, 세 명의 친구들은 지금도 일 년에 한두 번 만나고 있지만, 두 명의 여학생과 두 명의 남학생은 졸업 후 만나지 못하고 있다.

여학생들은 결혼했기 때문이고, 남학생 중 한 명은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딸 하나를 세상에 남긴 채 암으로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늘 과 수석을 했던 다른 한 명의 친구는 유난히도 수줍음을 잘 탔다. 지금도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던 그 친구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 그 친구는 대학 졸업 후 굴지의 재벌 연구소에 입사해, 우리나라 최초의 폴더폰 개발에 한몫을 단단히 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혹사당해 중병을 얻어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그 후 지금까지 소재는 물론 생사조차 알 길이 없어 안타깝다. 인생,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했지만, 지금 곁에 없는 그 친구들이 많이 그립고 보고 싶다.이윤배(조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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