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홈 뉴스
[취재에필로그] 규제를 이용하는 영리함
기사입력 2019-04-05 07:00:15.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속이 빈 카트리지에 잉크를 재충전해 파는 영국 회사가 있었다. 프린터 제조사 입장에서는 이 회사가 천적인 셈이다. 그 천적이 선전포고를 했다. 당시 일부 프린터에는 정품 이외의 잉크 카트리지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는 ‘스마트칩’이 부착돼 있었다. 회사는 이 틈을 노려 스마트칩을 금지하는 수정안을 유럽의회에 제출하도록 영국 의원에게 부탁했다. 스마트칩은 속이 빈 카트리지 재이용을 막기 때문에 재활용 정신에 반한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전 세계 프린터 제조사가 허를 찔린 셈이다.

최근 국회에서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철거공사에서 건설폐기물 ‘분별해체’를 의무화한 법안이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크게 주목받지 못한 법안이었지만, 해당 법안은 최근 정부 방침의 패러다임 변화를 암시한다.

법안 발의 시점에 환경부는 2027년까지 폐기물 발생량을 20% 감축하고, 순환골재 의무사용 비율을 50% 이상까지 확대하는 ‘자원순환기본계획’을 발표했다.

환경부는 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건설현장에 폐기물 배출량 저감 규제가 강화되면 건설사는 의무 비율을 맞추고자 현재의 공법을 재검토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건설자재 시장의 점유율 변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업계는 늘 규제 완화를 주문한다. 하지만 산업환경이 급속도로 바뀌며 규제가 글로벌 시장의 ‘규칙’으로 변모하고 있다. 새로운 산업 환경과 사회 가치에 부합하는 규제가 시장을 바꾸는 셈이다.

예로 2015년 글로벌 전기자동차 시장이 2배 이상 급성장한 이유는 같은 해 파리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된 덕분이었다. 협약에 맞춰 각국 정부는 2012년부터 대기환경보호법을 강화했고, 이 규제 대상에 자동차 제조사들이 포함됐다. 규제는 자동차 제조사들의 전기자동차 개발을 촉진했다. 이는 아시아에 빼앗겼던 자동차 패권을 유럽과 미국으로 되찾아오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했다. 환경규제를 통해 가격 경쟁력은 약하지만, 기술력은 우수한 자국 기업들에 보호막을 만들어준 셈이다.

앞으로 국제 사회는 안전과 환경, 두 가지 가치를 내세워 각종 규제를 만들어낼 것이다. 이 흐름은 바꿀 수 없다.

올해 3월 임시국회에서 건축물 안전을 강화하는 15개 규제 법안이 무더기로 발의됐고 이를 통합한 수정안이 국토교통위원회를 통과했다. 업계가 깜짝 놀랄 만한 내용도 많다. 그러나 대응방안으로 ‘업계 부담’만 운운하고 있을 수는 없다. 자칫 명분과 명예만 잃을 수 있다. 안전 규제가 강화됐다면, 글로벌 기준을 산업 스스로 만들며 시장을 선도할 방안을 강구하는 영리함이 필요한 순간이다.

 

최지희기자 jh606@

〈건설을 보는 눈 경제를 읽는 힘 건설경제-무단전재 및 배포금지〉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건설경제i' 앱을 다운받으시면
     - 종이신문을 스마트폰과 PC로 보시고 실시간 입찰정보도 보실 수 있습니다.
     - 명품 컨텐츠가 '내손안에' 건설경제i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 구글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 구글
인쇄
팝업뉴스 닫기
로딩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