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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뜻밖의 손님
기사입력 2019-05-06 09:35:22.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그때 그리 넉넉한 살림살이는 아니었지만 제사와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다. 엄마는 늘 여분의 밥과 반찬을 만들었다. 어느 날 허름한 옷차림의 늙은 사내 하나가 밥을 좀 달라고 주춤주춤 집안으로 들어왔다. 엄마는 밥과 반찬을 올린 개다리소반을 대청에 앉은 그에게 내주었고 눈 깜짝할 새도 없이 그는 고봉밥 한 그릇을 뚝딱 먹어치웠다. 그러고는 머뭇거리며 어떤 일이라도 할 테니 거둬 달라고 작은 소리로 애원했는데 어투가 어디 먼 곳에서 온 듯했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그는 너무 늙고 왜소했으며 때 묻은 손은 쩍쩍 갈라져 무슨 일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부터 행랑채에 터를 잡고 허술하게나마 새끼를 꼬거나 마당을 쓸고 나뭇짐을 져다 날랐다. 그의 밥그릇은 우리 집에서 젤 컸고 꾹꾹 눌러 담은 밥은 그릇보다 더 높이 올라갔다. 하지만 밥이든 반찬이든 단 한 번 남긴 적이 없었다.

나는 가끔 멀리서 그를 맴돌았다. 새끼를 꼬거나 나뭇짐에서 꽃가지를 내밀 때도 그는 말이 없었다. 걸음은 느렸고 뒤뚱거렸다. 발가락이 한 개도 없는 듯 양말을 신은 발끝이 뭉툭했고 신발을 신으면 늘 끈으로 묶고 다녔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한 번도 양말을 벗지 않아 그의 맨발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우린 어림짐작을 했다. 전쟁터에서 날아갔을까, 떠돌다 동상으로 문드러졌을까. 하지만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다. 그해 겨울을 보내고 그는 어딘가로 다시 떠났다.

일전에 남편이 뭔가를 만들겠다고 어디서 구한 관솔덩어리 두 개를 내놓는데 깜짝 놀랐다. 세워 놓고 보니 영락없는 그의 발이었다. 어디로도 떠나지 못하고 오랜 세월 뭉치고 엉긴 채 조금씩 소나무의 옹이로 자랐을까. 발가락이 다 문드러진 그의 맨발이 아마 이랬을 것이다. 뜻밖의 손님은 잊고 있었던 수십 년 저 쪽으로 순식간에 나를 끌고 갔고 나는 조금 아팠다.

이미 먼 세상 사람이 되었을 그의 발은 무슨 연유로 오랜 시간을 걸어 다시 나를 찾아왔을까. 한 며칠 관솔덩어리를 들여다보다 “아무것도 만들지 말고 이대로 두는 게 어떻겠느냐” 했더니 남편은 “아니다, 뭔가로 다시 태어나게 해주자. 그도 그것을 원할 걸” 한다. 한동안 나는 발에 대한 생각에 빠져 있을 것이다. 숙제를 해야 할 아이처럼 날마다 내 안과 밖을 서성일 것이다.

       

권애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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