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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존경하는 감사원장님께
기사입력 2019-05-14 07:00:12.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존경하는 감사원장님, 취임하신 지 어언 1년 반이 되어갑니다. 저는 건설회사 대표 자리를 떠난 지 3년이 넘어서 이제는 감사원의 동향에 민감할 일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현직에 있을 때에는 현장에서 감사원 감사가 나왔다는 보고를 받으면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감사원은 공무원들이 세금을 적정하게 집행하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곳이라고 하지만 실무적으로 기업에는 무척 두려운 기관입니다. 공무원에게는 감사원이 ‘갑’이겠지만 기업에는 ‘수퍼 갑’으로 인식됩니다. 공사 감독관이 우리 회사 때문에 징계를 당한다는데 “회사는 억울하다”고 감사원에 대꾸할 엄두가 나겠습니까.

  여느 조직처럼 감사관의 업무 행태도 원장님에 따라 달라지더군요. 그야 당연하지 않느냐 하시겠지만 피감자들은 혼란스럽습니다. 문제의 원인을 정책 결정과정부터 짚어보겠다는 분이 취임하셨을 때 시장에서는 상당히 신선한 기대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다음 원장님은 공사 부실에 초점을 맞추셨습니다. 감사관들이 전국의 건설현장에서 콘크리트 균열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균열을 표시한 빨간 스프레이 칠이 현장 콘크리트 표면에 무성했고 기자들은 온 나라 현장이 부실투성이인 것처럼 기사를 썼습니다. 부실, 불량 같은 단어들은 국민들의 뇌리에 오래 남기 마련입니다. 콘크리트는 소성(塑性)물질이라 구조물마다 허용하는 균열 폭이 정해져 있습니다. 당시 감사 행태가 너무 심해서 콘크리트 전문교수가 감사원에 가서 균열의 특성에 대한 강의도 했습니다. 위 두 분 원장님이 다 판사 출신이셨는데 감사원이 해야 할 일을 보는 눈이 이렇게 달랐던 겁니다.

  넋두리가 길었습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 ‘감사원이 예정가격 초과 낙찰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아마 원장님께는 ‘예정가격’이라는 단어가 생소하시겠지만 건설시장에서는 거의 매일 이 단어 때문에 희비가 갈리고 가끔은 다툼과 비리가 불거지기도 합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ㅇㅇ은행 신축공사’ 입찰 건은 실시설계기술제안 방식이었지만, 이 방식보다 훨씬 더 많이 집행되는 제한적 최저가 입찰에서도 ‘예정가격’은 대단한 위력을 갖고 있습니다.

  국가 조달의 기본은 최저가입니다. 그런데 오래전 입찰금액을 1원으로 하는 등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례들이 있어서 어느 금액 이하로 내려가거나 나눠먹기를 못하도록 제도를 만든 것이 지금의 매우 복잡하고 희귀한 방식으로 진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시장 질서와 세금 절약이라는 명분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몇 천억원짜리 공사도 예정가격보다 단 1원이라도 높게 입찰하면 실격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 바탕에는 국가가 견적한 공사금액은 절대로 옳은 것이라는 사상이 깔려 있는데, 저는 그 뿌리를 일본의 보괘(품셈)에서 찾습니다. 옛날 막부에서 목수들에게 공사를 나눠주었는데 지금의 담합과는 역사적 동기가 달랐지만 어쨌든 적정한 금액 산정의 기준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일본 건설시장은 이렇게 발주자가 계산한 금액으로 주는 대로 골고루 일을 나눠 받는 수직적 계약관계가 형성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나눠주기, 나눠먹기는 먼 옛날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지금의 입찰제도로는 원가도 맞추기 어렵다 보니 쥐가 고양이를 물 듯 발주처를 상대로 소송을 걸고 있습니다. 이판사판 서로 봐줄 것도 없는 시장이 된 겁니다.

  실제 입찰해 보면 70~80% 선에서 낙찰이 됩니다. 아니 소수점 이하 몇 자리까지 정확히 입찰가격을 써 내도록 제도화되었다고 해야 맞는 표현일 겁니다. 수천억원이 넘는 공사입찰에서 몇 십만원 차이로 낙찰자가 결정되기도 합니다. 응찰자들이 답을 다 알고 있으니 그걸 흔들기 위해 15C4라는 수학까지 동원하여 복수 예비가격이라는 것도 만듭니다. 이거 맞추는 소프트웨어도 개발되어 팔리고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효험이 있다는 산에 올라가 수주기원제도 지냅니다. 저는 현직에 있을 때 신입사원들에게는 입찰견적을 시키지 말라고 했습니다. 배울 일이 아니거든요.

  문제는 발주자가 작성한 예정금액 대비, 실제 현장 원가율은 공사유형별로 다르다는 겁니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발주자가 뽑든 시공자가 뽑든 현장의 직접 원가는 같아야 합니다. 제대로 된 입찰 시스템이라면 입찰자 간의 경쟁은 현장의 간접 원가와 본사 관리비 그리고 이익에서 차이가 나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공사를 해보면 지하철공사의 현장 원가율은 매우 높고 항만공사는 낮습니다. 웬만한 시공사 기술자들이면 실제 현장투입원가를 잘 뽑습니다. 발주처 공무원들도 실제 원가를 대개 알게 됩니다. 시공사 기술자들이 슬쩍 알려주거든요. 그래도 공무원들은 모른 체 합니다. 현 입찰견적제도가 모순이라는 걸 알면서 입찰을 집행한 것밖에 안되니까요.

  예정금액을 현장 실투입원가로 바꾸게 되면 품셈이 본업인 기술자(입찰견적 전문가?)들은 일자리가 불안해집니다. 건설사 오너들도 싫어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견적하려면 제대로 된 기술자들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건 돈만 더 들거든요. 지금은 견적 능력이 없어도 입찰 운만 좋으면 먹고 살 수는 있으니까 지금의 제도가 좋지요.

  진짜 문제는 해외 진출을 독려하는 정부와, 제도 만드는 정부가 따로 있는 것 같다는 점입니다. 적어도 해외에 나가서 싸울 회사들에는 국내 입찰에서 현장원가를 제대로 뽑을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악법도 법이니 개선되기 전에는 지키는 것이 법치이겠지요. 그러나 악법이 산업의 발전을 막고 있다면 이걸 시정하라고 하는 조치도 감사원의 일 아닌지 조심스럽게 의견을 드려봅니다.

공무원에게 창의적으로 일하라는 주문은 공무원의 본분을 모르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법대로 집행만 잘 해도 B+, 시장의 문제점을 찾아 법을 개선하는 노력을 하는 공무원은 A학점 공무원입니다.

 

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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