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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민자 활용하려면 ‘공공=善, 민간=惡’ 프레임 버려라
기사입력 2019-06-05 07:00:09.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우리나라 인프라 보유량 혹은 축적도는 세계 상위권이다. 세계경제포럼이 매년 발행하는 국가 경쟁력 비교 보고서에서 한국은 소득 대비 인프라 충족도가 높은 국가에 속한다. 국가재정 운용계획에서 SOC 투자비를 줄이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건설 투자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도 국가 비교 수치를 인용한다. 세계경제포럼이 경쟁력 비교에서 이용하는 인프라 축적 수치는 도로나 철도, 전력 생산시설 등 주로 국가 대동맥에 해당하는 국가 인프라다. 일반 국민이 체감하는 충족도와는 차이가 있다.

  서울대학교가 지난 2월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는 세계경제포럼과 다르게 나타났다. 광역교통에 대한 충족도는 78%지만 의료기관이나 공공시설, 학교 등에 대한 충족도는 77%로 나타나 추가 수요가 확인됐다. 2018년 지자체 단체장들이 선거로 내세운 공약사업 실행에 필요한 예산은 460조원이다. 지난 4월15일 국무조정실이 발표한 생활형SOC의 투자비는 48조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토목사업과 분리하여 국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생활형SOC를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용 중인 인프라의 약 45%가 향후 20년 내에 사용기간 30년을 넘기게 돼 별도 대책이 없으면 노후화로 인한 인프라 부실화는 불가피하다.

  인프라 투자 수요는 정부나 정치권의 기대와 달리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투자 수요는 늘어나지만 현재와 같이 국가재정으로만 감당하기가 불가능하다. 국회 예산정책처 보고서에 의하면 GDP 대비 국가부채비중이 2019년 38.4%에서 2050년에 85.6%로 2.2배 늘어난다. 국가재정의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부채 비중 40% 미만을 목표로 하는 특별법까지 발의됐었다. 국가재정은 매년 증가하지만 지출 구조는 심각해진다. 재정에서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지출 할 수 있는 재량예산 비중이 48.9%에서 39.5%로 급격히 떨어진다. 한국재정학회에 의하면 재량예산 39.5%에도 경직성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12%로 정부가 사업에 투자할 수 있는 재량예산은 27.5%로 급격히 줄어든다.

초고령화 사회와 정치 포퓰리즘에 덮인 의무지출 비중은 예측보다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국가재정 현실을 보면 부실화되기 시작한 인프라에 대한 재정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와 정치권도 이런 사실은 알고 있다. 기재부는 2019년 업무보고에서 지역 균형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24.1조원 중 민간자본을 최대한 활용하겠다고 했다. 국회에서는 민간자본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민간투자법 내 적용 대상을 대폭 확대하는 법 개정안까지 발의했다. 국가재정 여력의 한계를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부족한 재정을 메꾸기 위해 민간자본을 해결사로 지목한 것이다.

  지금까지 국내 민투사업의 규모는 약 105조원이다. 국내 인프라의 90% 이상은 재정사업이다. 정치권과 정부는 민투사업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강하다. 민자사업으로 진행 중이었던 ‘서울∼세종 고속도로’ 사업을 재정사업으로 전환시켰다. ‘공공=선, 민간=악’이라는 프레임이 팽배해 있다고밖에 설명이 안 된다. 하지만 그때와 달리 지금은 민자사업 확대다. 재정의 한계성이 분명해졌음을 인지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매킨지 보고서에 의하면 인프라 투자에서 민간자본 비중이 국내와는 판이하게 다르게 나타난다. 신흥국의 경우 20%, 선진국의 경우 55%가 민간자본이 인프라에 투자되고 있다. 아시아투자개발은행(AIIB)도 아시아권의 인프라 투자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최대 60%까지 재정이 아닌 민간자본과 다자간개발은행 자금이 활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간자본 활용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이 국제적으로 공인받고 있는 셈이다. 국내 인식과는 완전히 다르다.

  민간자본을 인프라 부실화 문제의 해결사로 기대하지만 지금과 같은 프레임으로는 불가능해 보인다. 고속도로 관리 주체인 한국도로공사가 누적된 부채를 해소하는 데 현재와 같은 요금으로 갚으려면 201년이 걸린다. 서울 지하철의 한 해 적자액은 4000억원 이상이다. 서울교통공사의 누적 부채는 13조원이다. 도공과 교통공사가 현행 요금으로 누적 부채를 해소하기란 불가능하다. 대중교통이기 때문에 사용료가 아닌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는 프레임을 혁신하지 않는 한 누적 부채는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부담을 전가시킬 뿐이다.

민투사업의 대상 확대보다 기본 프레임 혁신이 먼저다. 민자도로는 대체 교통수단이지 세금으로 충당되는 교통편이 아니다. 버스와 지하철, 택시도 대중교통이다. 하지만 요금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차이가 난다. 사용자의 선택에 따라 사용료가 매겨진 것이다. 사용자 부담원칙을 도입하지 않으면 민간자본 활용 기대는 접어야 한다. 원가 산정방식, 즉 입구에 방점을 둔 국계법은 도급계약이다. 협정 요금 혹은 사용료가 성패를 좌우하는 민자사업과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협정 요금 혹은 사용료는 완공 후 결정되는 출구 방식이기 때문에 새로운 제도 프레임 구축이 필요한 것이다. 민간자본을 활용하려면 기존의 법과 제도로는 어렵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복남 서울대 산학협력중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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