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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헛다리 짚는 전기요금 누진제 논란
기사입력 2019-06-11 07:00:09.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올여름 날씨가 심상치 않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 전인데도 무더운 날씨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 5월25일 강릉지역 최저 기온이 섭씨 27.4도를 기록해 전국에서 올해 첫 열대야를 기록했다는 보도다. 열대야는 전날 오후 6시부터 오전 9시 사이의 최저기온이 섭씨 25도 이상을 기록하는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올해 기록은 작년에 비해 30일이나 빠르고 1973년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빠른 것이라 한다. 뿐만 아니라,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최고 기온이 섭씨 33도 이상인 날이 이틀 이상 지속되면 내려지는 폭염주의보도 연일 발령된바 있다.

  매년 여름이면 무더위를 이겨내야 한다는 부담 외에도, 냉방 가동에 따른 전기요금 걱정이 앞선다. 사상 유례가 없었던 작년의 폭염을 맞아 정부는 냉방기인 7월과 8월 두 달 동안 가정용 전기요금에 적용되는 누진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하고, 저소득층과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전기요금 할인을 확대하는 등 무더위에 대비한 전기요금 부담 경감조치를 시행한 바 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 등의 원인으로 이제 해마다 되풀이되는 무더위와 씨름하는 국민을 시원하게 해주는 근본적인 전기요금 제도는 여전히 요원한 것 같다.

  며칠 전, 정부와 전력 당국은 한 토론회에서 전기요금 누진제 민ㆍ관 태스크포스가 마련한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이 시도되는 건 지난 2016년 6단계를 현재의 3단계로 축소한 이후 처음이다. 개편안에는 냉방기인 7~8월 동안 누진 구간을 확대하는 방안, 같은 기간 동안 누진단계를 현 3단계에서 2단계로 축소하는 방안, 그리고 누진제를 아예 폐지하는 방안 등 3개의 대안이 포함되었다. 하지만, 어떤 안으로 결정된다 해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에는 크게 부족해 보인다.

  먼저, 대책이 대증요법적이고 주먹구구식이다. 첫째 안은 많이 쓰는 가정의 기준을 약간 높여 주는 것으로, 작년에 한시적으로 적용했던 방식이다. 둘째는 최고 누진율을 적용받는 3단계 구간을 없애는 것으로, 전기를 많이 쓰는 가정이 큰 혜택을 보게 된다. 셋째는 사용량에 관계없이 동일한 요금단가를 적용하자는 것이다. 모두가 전기를 많이 쓸수록 할인율이 높아져 누진제의 기본 취지에 배치되는 문제를 안고 있다. 더욱이 셋째 안은 전기를 가장 적게 쓰는 1단계 구간의 전기요금이 오르게 되어 시행을 위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둘째, 가뜩이나 복잡한 요금체계가 더욱 복잡해진다. 지금까지 국내 전기요금 체계는 지나치게 정치논리가 작용한 결과, 그 구조가 복잡하고 시장이 왜곡되는 원인이 된다는 지적이 많았다. 즉, 전기의 공급형태와 용도는 물론 시기와 시간대에 따라 다른 요금이 적용되며, 여기에 많은 예외 규정이 적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전기의 과소비를 막고자 누진제를 시행하면서 각종 이유로 사용량 증가에 따른 예외 규정을 만든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번의 조치도 같은 맥락으로 읽히는 이유이고, 새로운 전기 수급 및 요금체계 마련 요구의 당위성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지금의 누진제 논란은 주로 계절적 요인에 따른 것이다. 우리는 무더위와도 싸워야 하지만 동장군에도 맞서야 한다. 요즘엔 여름보다 겨울의 전력수요가 더 많다. 그럼에도 왜 여름의 냉방용 전기요금에만 이 같은 논란이 이는 걸까? 특히 난방용 전기의 사용은 저소득층이 더 비중을 차지한다. 냉방기와 난방기 사용 시간대의 요금이 달라서다. 난방과 달리 냉방 사용 시간대에는 수요가 동시에 몰려 비싼 요금이 적용된다. 수요를 줄이거나 분산시키면 누진제도 별 문제가 안 되거나 필요가 없단 얘기다. 정부와 전력 당국이 고민해야 할 몫이다.

  전기요금 누진제는 일정 기간 누적된 사용량으로 요금을 부과하되, 사용량이 많을수록 더 비싼 단가를 적용하는 제도다. 하지만 지금의 전기 수급체계에서는 누적 사용량은 물론, 순간 사용량도 같이 관리되어야 한다. 시간에 따른 사용량 변동이 클수록 수급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순간 사용량 관리를 위한 실시간 요금제가 필요한 이유다. 수요가 많은 시기에 그만큼 비싼 요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하지만 소비자가 수시로 변동하는 요금에 따라 소비를 조절하기는 쉽지 않다. 요금이 수시로 변하는 만큼 쉽게 대응할 수 있는 합리적 수단이 먼저 마련되어야 한다.

  과거 전기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산업화 시절, 가정의 소비를 줄여 이를 산업 활동에 지원하고자 도입된 게 지금의 누진제다. 전기 생산 능력과 산업용 전기 소비가 크게 늘어난 지금, 이 같은 누진제를 여전히 고수해야 할까. 오랜 기간 기꺼이 희생을 감내해 온 수요자인 국민을 위한 전기 요금 제도와 대책을 기대해본다.

이태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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