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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우리 집 라면의 역사
기사입력 2019-06-21 07:00:11.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세상에서 가장 맛난 음식이었다. 적어도 짜장면 맛을 알기 전까지는 라면이야말로 내 인생에서 최고의 음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어머니가 5일장에 가시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가시는 날마다 라면을 사 오신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야속하게도 라면의 짝이 맞지 않았다는 것인데 나로서는 심각한 고민이었다. 가난했던 시절, 어머니의 라면을 간절하게 기다리던 형제들의 입은 다섯이었는데 장바구니에는 늘 라면이 두 개뿐이라 아쉬웠던 거였다.

  그러나 해결 방법이 있었다. 라면보다 많은 양의 국수를 같이 삶아내면 되었다. 배도 부르고 라면의 맛도 실컷 즐길 수 있는 획기적인 조리 방법이었다. 요즘의 사정은 오히려 뒤집혔지만 당시에는 국수보다 비싼 라면 값 때문에 생긴 풍경이었다. 맥주 맛도 보고 확실하게 취할 수도 있도록 폭탄주를 제조하는 것처럼 배도 부르고, 라면 맛도 느낄 수 있는 조리 방법,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신의 한 수였다.  강산이 그 후 다섯 번이나 변했다. 이제는 라면보다 국수가 비싼 세상이다. 지나온 세월 따라, 사람들의 입맛을 따라 각양각색의 라면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매운 라면, 얼큰한 라면은 기본이고 비빔면도 있고 짜장라면이나 생일날 먹기 편할 미역라면 같은 것도 있다. 그러나 라면은 각종 성인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의심을 받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경계하는 식품이 되었다. 기름에 튀긴 꼬불꼬불한 면발이 문제라는 사람도 있고 중독성이 강한 스프가 문제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우리 집은 아직 라면이 필수품이다. 이래저래 건강에 좋지 않다지만 먹지 않더라도 구비해야 할 이유가 있다. 나도 살아야 해서다. 나이 들수록 밥 힘으로 산다는데 갈수록 밥을 얻어먹기 힘들다. 애들을 모두 독립시키고 나니 아내는 점점 밥 하는 것을 귀찮아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라면을 먹는다고 물을 끓인다. 그러면 아내가 별 수 없이 밥을 하기 시작한다. 밥을 하지 않는 것은 외식을 기대하기 때문인데 라면을 먹을 바에는 밥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생각건대 명분은 남편을 위하는 것이지만 진짜 이유는 너무 일찍 혼자되는 게 무서운 것 아닐까. 남은 삶은 누가 뭐래도 누군가 옆에서 계속 잔소리를 들어줘야 외롭지 않을 테니까.

백두현(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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