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홈 뉴스
[마음의 창] 소 모는 소리와 찬가
기사입력 2019-06-25 06:00:18.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밀림이나 마찬가지인 고향 뒷산을 사십여 년 만에 더듬고 온 직후, 일면식도 없는 노인과 긴 통화가 이뤄졌다. 내 괴이쩍은 행적을 지켜보기라도 한 것처럼 그 지역을 개발하는데 일조했다는 어른이 연락을 해왔다. 나를 궁금히 여긴다기에 아는 이가 가교역할을 했다고 한다.

“10년 전이던가. 누가 찾아왔더래요. 머리 하얀 할머니를 모시고 와서는 저기가 우리 살던 잡자리라 했다는 게요.”

일순 목젖이 뜨거워졌다. 그들에게 하얀 할머니로 인식된 분은 내 어머니로, 고향땅을 먼 발치서 바라만보다가 몇 차례 퇴짜를 맞은 이력이 있는데 이미 고인이 되셨다.

그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처음 그곳에 가보니 빈터뿐이더란다. 체육시설부지라고 정해져있는데 정작 조성을 하려니 엄두가 안 나더란다.

“농부들을 데려다 직원으로 일을 시키는데 교육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내가 조회시간과 퇴근시간 앞에 들려줄 계룡대 찬가를 만들었지요. 그 골프장 정식 이름이 ‘계룡대 체력단련장’이거든. ―신비로운 계룡산 관암봉 아래/넓고 푸른 초원은 우리의 일터(중략)//생활의 보금자리 삶의 터전(하략).”

회억에 찬 그는 마치 그 터에 살다 나온 나를 한 시대의 증인으로 세우는 듯했다. 군 장성을 지낸 한창때에 농민들이 떠난 폐허의 산촌군락을 군 체력단련장으로 꾸며야 했으니 얼마나 많은 궁리가 따랐겠는가. 그 과정에서 체험한 이야기들이 과부하가 일어난 모양이었다.

“―이러루, 이러루 와~와~, 어허, 이리 이리, 이러루 와~와~~~.”

박토에 쟁깃날을 눌러 박고 팍팍한 생의 리듬을 조율하며 소를 어르던 아버지의 구성진 가락이 아직도 여운으로 짙게 흐르는데, 그 구릉지를 딛고 살아간 또 다른 사람들의 일상이 뇌리를 마구 덮친다. 외형이 달라졌을 뿐 그곳은 내 아버지나 제2, 제3의 아버지들에게 분명한 일터였고 식량의 보고였다. 더러는 소 모는 사람이 되고 또 누구는 그 가락에 젖어드는 사람이 되어 수많은 꿈을 키워나갔으리라. 그래서 저마다 나름의 고유한 추억이 있고 향수에 젖는 것 아니겠는가. 그때그때 우리 선조들이나 나나 현재의 그들이 향유한 시간의 누림은 당사자들만의 근접 못할 몫이리라.

79세라는 노익장이 흉금을 털어놓던 그날은 단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김선화(수필가)   

 

〈건설을 보는 눈 경제를 읽는 힘 건설경제-무단전재 및 배포금지〉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건설경제i' 앱을 다운받으시면
     - 종이신문을 스마트폰과 PC로 보시고 실시간 입찰정보도 보실 수 있습니다.
     - 명품 컨텐츠가 '내손안에' 건설경제i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 구글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 구글
인쇄
팝업뉴스 닫기
로딩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