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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그거
기사입력 2019-06-28 07:00:13.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그거’에는 공감이 들어 있습니다. 서로 통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말입니다. 공감이 없는 ‘그거’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 하는 대명사일 뿐입니다.

“어 뭐더라 그거…. 비올 때 쓰는 거.”

“아, 그거. 우산!”

앞 사람의 그거는 진짜 몰라서 꺼낸 말입니다. 뒷사람의 그거는 비가 올 때 써봤다는 앞사람과의 공감이 있었기 때문에 떠오르는 단어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낱말을 잊곤 합니다. 머릿속에는 그려지는데 자꾸 그거라고 말합니다. 배우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가 나온 드라마 몇 편을 얘기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거라는 것은 같은 경험이 없이는 알 수 없는 말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실재하지 않는 것을 공감할 때가 있습니다. 현미경이 발명되지 않았던 시절 바이러스를 발견한 학자들은 증세와 현상의 설명만으로 그거라는 것에 공감했다고 합니다. 뭔가는 있는데 여태까지 없었던, 알 수 없는 그것을 나중에 바이러스라고 명명했다고 합니다. 이러저러한 상황 판단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실존하는 그것으로 통했다는 얘깁니다. 사실 실재는 했지만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 이름 짓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서로 그거라고 부르다가 이름이 나중에 만들어진 경우일 겁니다.

전라도에는 ‘거시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냥 군말로 쓰일 때도 있지만 그거를 대신하는 말로도 쓰입니다. 어린 시절을 한집에서 함께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한 지역에 오래 살아온 두 시누이의 대화가 걸작입니다.

“거시기 있잖냐~”

“아아, 민들레~”

“으으 그거.”

막내 시누이는 언니가 거시기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단어를 말해줍니다. 한 공간에 있으면 척척 죽이 맞아 마치 대변인 같습니다. 육십 중반이 된 언니는 거시기란 단어가 없었다면 대화를 제대로 이어갈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가 옹알이 할 때 엄마가 통역해 주듯 막내언니는 큰언니의 한 단어를 여러 말로 번역해 줍니다. 둘은 통하는 게 많아서 거시기만으로도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40년 간 돌봐온 자폐증 아들을 살해한 60대 모친에게 ‘집행유예’를 내렸다는 기사를 보고 많은 생각이 지나갔습니다. 치매를 앓아온 어머니를 돌본 일이 있었기 때문에 힘든 시간과 안타까웠던 심정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폭력적인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자신도 힘들었겠지만 그 자식을 두고 죽을 수도 없는 어머니의 심정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싶지만 뭔지 모를 그거가 가슴에서 올라옵니다. 부디 그 모친에게 선처가 있기를 바라 봅니다.

 

정하정(수필가)

〈건설을 보는 눈 경제를 읽는 힘 건설경제-무단전재 및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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