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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지구별 어느 곳에선
기사입력 2019-07-02 07:00:08.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오늘도 그분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신다. 사거리 과일가게와 채소가게 사이에 붙박이처럼 앉아계신다.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유모차 의자에 앉아 고요하게 정면을 바라보신다. 신호등을 건너오는 사람들이 곁을 지나갈 때는 조금씩 의자를 움직여 길을 열어주는 모습도 그대로다. 이젠 이런 그림이 자연스러운지 지나가는 그 누구도 의식하지 않는 듯하다.

 아흔이 다 된 그분은 대추나무집 아래층에 혼자 사신다. 나는 그분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이웃으로 지낸지 십수 년도 더 되었지만 누가 다녀가는 걸 본 적이 없다. 궁금하지만 그래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까지 아무것도 물어보질 못했다. 언젠가부터 날마다 건널목에 나와 앉아 있는 걸 보면 아마도 사람이 그립거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하다.

나는 그분을 볼 때마다 조그만 자기별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는 어린왕자가 떠오른다. 자리를 조금씩 뒤로 옮기면서 오가는 행인들을 지켜보는 그분에겐 바깥의 모든 것들이 마냥 바라보고 싶은, 애틋한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날마다 자기별을 지키고 앉아 먼 별들을 생각하시는 듯, 무슨 꿈을 꾸시는 듯, 이미 시간이나 속도 같은 것은 잊으신 것 같다.

자식을 기다리는 늙은 엄마들의 모습이 저럴까. 불편한 자신의 시간을 조금씩 옮기며 고독하게, 아프게, 그리움을 견디는 게 엄마라는 자리일까. 기다리는 것이 어디 자식뿐일까만 쓸쓸히 흘러내리는 그분의 눈빛에서 집 떠난 자식들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나도 엄마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으면 기다림도 없다. 기다림은 삶을 버티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기약이 없어도 기다리는 동안은 희망으로 설레게 된다. 지구별 어느 한 쪽에선 바람이 불거나 창문만 덜컹거려도 바깥을 내다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돌아가 안길 그들이 있어 또 어떤 발걸음들은 안심하고 세상을 누빌 수 있지 않을까.

‘고마 올라가입시다. 먼지가 너무 심합니다. 저캉 같이 집으로 가시지요.’ 그분은 집처럼, 고향처럼 앉아 내 재촉을 합죽한 웃음으로 받으신다. 하지만 아직은 일어설 기색이 없어 보인다. 마주칠 때마다 나는 늘 같은 말을 건네고 그분은 늘 따뜻한 미소를 보내신다. 오늘도 기다리는 이는 오지 않았나 보다. 땅거미가 내리고 있는데. 창문마다 곧 불들이 켜질 터인데.

권애숙(시인)

 

〈건설을 보는 눈 경제를 읽는 힘 건설경제-무단전재 및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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