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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청포도
기사입력 2019-07-03 08:21:39.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마당이 있는 집에 살게 되면 청포도를 심고 싶었다. 무더운 여름 포도넝쿨 그늘에서 달콤하게 익어가는 포도 향기를 맡으며 책도 읽고 노을을 바라보며 아무 생각없이 앉아 있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귀촌을 하고 마당이 있는 집에 살게 되면서 나도 청포도 한그루를 갖게 되었다.

 작년에 셋째 언니가 잘라 준 줄기를 가져다 심었다. 두어달 동안 잎사귀 몇 개만 피우고는 더 이상의 변화가 없었다. 저러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줄기를 뻗고 샛가지를 치고 겨울도 잘 이겨내고 콩알만한 포도알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고놈들이 기특해 포도나무 아래 서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들여다보게 된다. 남편도 틈만 나면 고개를 뒤로 젖히고 줄기들의 방향을 어디로 잡을까를 구상한다. 이젠 제법 그늘도 만들었다.

 아마도 취학전이었을 것이다. 옆집에 혼자 사는 육촌 올케 언니가 동네에서 한그루밖에 없는 청포도 줄기를 구해다 심었었다. 올케 언니네는 구멍가게를 하고 있어서 늘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별다른 화젯거리가 없는 시골은 작은 변화에도 이목이 집중된다. 새로 심은 포도는 몇날 며칠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언젠가 먹어 본 청포도의 달콤함을 잊을 수 없었던 나도 관심을 가졌다. 옆집 프리미엄을 경험으로 알고 있던 나는 어른들이 포도에 대한 대화를 하면 한귀퉁이를 차지하고 귀를 쫑긋 세우곤 했다. 누군가 “뿌리 내리기 전에 오줌을 누면 죽는다”고 한 말이 내 귀에 꽂혔다. ‘왜 오줌을 누면 포도나무가 죽을까?’라는 의문이 생기자 확인을 하고 싶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기회가 왔다. 올케 언니도 집에 없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때마침 오줌까지 마려웠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실행에 옮겼다. 정말로 잎사귀 몇 개 피워 올렸던 포도줄기는 말라 죽고 말았다. 사람들은 분명 누가 오줌을 누었을 것이라고 했다. 동네의 몇몇 개구쟁이들의 이름이 거론되었지만 내 이름은 없었다. 아무도 범인이 나라는 것을 모른다는 것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나 포도줄기가 심어져 있던 자리를 볼 때마다 마음이 켕겨 불편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불편했던 마음도 기억에서 사라졌다. 사라졌던 유년의 기억들이 다시 떠오른 것은 셋째 언니네서 청포도를 먹으면서였다.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유독 내가 많고 많은 포도 중에 청포도를 심고 싶었던 것이 유년시절의 기억들과 가져보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다.

권혜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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