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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능소화는 피고 지고
기사입력 2019-07-08 07:00:15.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7월의 아침, 부서지는 햇살 사이로 주홍빛이 찬란하다. 아파트 담벼락에도, 산책로 울타리에도, 오래된 주택 대문에도 낭창낭창한 줄기마다 꽃등이 달렸다. 초여름의 길목을 안내하는 능소화다. 낙엽성 덩굴식물인 능소화는 꽃잎이 오보록하게 피어나 주위를 환하게 밝힌다. 이 꽃은 ‘금등화(金藤花)’라고도 불리는데 중국이 원산지다. 우리나라에서는 양반집에만 심을 수 있다 하여 ‘양반화’라고도 불렸다.

꽃에 얽힌 전설도 있다. 옛날 ‘소화’라는 이름을 가진 예쁜 궁녀가 임금의 은혜를 입고 빈이 되었으나 다시는 찾지 않는 임금을 그리워하다 죽은 슬픈 이야기다. 임을 기다리느라 항상 귀를 열어놓아 꽃잎이 커졌다 한다. 또 임의 모습을 보기 위해 담벼락이든 나무든 타고 올라가는 습성이 있다고 하니 그럴듯해 보인다. 짙은 그리움의 색깔이 주홍빛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긴 꽃대 속에 궁녀의 한이 서리서리 맺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꽃잎을 가만 보고 있으면 묘한 매력에 사로잡힌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게 자기들끼리 으밀아밀 뭔가를 속삭이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처음 능소화를 눈여겨본 건, 중학교 때였다.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둔 옆집에 능소화가 있었다. 그 집에는 당시 동네에서 가장 예쁘기로 소문난 선희 언니가 살았다. 선희 언니는 여고생이었다. 그녀는 머리를 양 갈래로 땋고 다녔는데 여름 한낮에 우물가에서 머리를 감곤 했다. 그때 그녀 옆에 이름 모를 꽃이 휘늘어져 있었다. 처음에는 그 꽃이 능소화인 줄 몰랐는데 화려한 색깔의 아름다운 꽃이 퍽 인상적이었다. 어쩐지 선희 언니와 능소화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꽃이 능소화라는 걸 알게 된 건, 몇 년이 지난 뒤였다.

 어느 해, 고향에 가니 그 집이 텅 비어 있었다. 이웃해 살던 집에 사람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이상했다. 몇 해가 지난 뒤에는 아예 집마저 사라지고 터만 남아 있었다. 집도 없고, 사람도 없는 곳에 능소화만이 세월을 부둥켜안고 있었다. 그날 나는 삶의 무상함 같은 걸 느꼈다. 그래서였을까. 내게 능소하는 존재감 있는 꽃으로 다가왔다.

 예전에 비해 요즘은 관상용으로 많이 심고 있어 초여름에 능소화를 볼 수 있는 기회도 많아졌다. 꽃을 그저 꽃으로만 여길 때와 그 속에 깃든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바라볼 때는 확연히 그 모습이 다르게 느껴지는데 내게 능소화가 그렇다. 올여름도 능소화와 눈을 마주치다 보면 지겨운 여름도 심심찮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장미숙(수필가)

 

〈건설을 보는 눈 경제를 읽는 힘 건설경제-무단전재 및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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