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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변화를 이끄는 발주자의 의지
기사입력 2019-07-11 07:00:09.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갑작스러운 연락이었지만 반가웠다. 국토교통부가 훈령으로 입법예고한 ‘공공건설공사의 공사기간 산정 기준’이 적용되는 프로젝트에 기술자문 참여 의사를 묻는 전화였다. 지난해 입법예고 되었으나, 실제 적용되려면 시간이 걸리겠거니 잊고 있었는데, 뜻밖이었다. 자문 요청을 단숨에 승낙했다. 서둘러 신청서를 제출했고 다행스럽게 자문위원으로 선정되었다.

  국토부 훈령은 개략적인 가이드라인이다. 디테일한 사항은 공공기관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 이번 자문은 어떻게 해야 하지? 그동안 요청받은 자문과 다르다. 국내 건설업이 발전하는 순간을 함께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눈이 빡빡해지며 예민해졌다.

  자문위원으로 선정되자 설계사들이 공사기간 계획서를 보내 주었다. 설계사들은 토목, 전기통신, 건축 분야였다. 공사기간 계획서에는 시공계획, 주요 공종 작업수량, 비작업 일수 산정, 공사기간 산정 등이 담겨 있었다. 토목 분야 자료가 가장 많았다. 국토부 훈령에 맞추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그런데 업무분류체계(WBS)는 없고, 적정 공기를 검증할 만한 CPM 공정표도 없었다. 엑셀로 만든 바차트 공정표가 전부였다. 전기통신 분야도 토목 분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건축 분야 자료가 가장 부실했다. WBS는 없고, 주요 공정이라며 10여개 작업만 공사기간을 산정했다. 공정표는 엑셀로 만든 바차트인데, 토목・전기통신 분야보다 부실했다.

  어느 정도 예상했으나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자료 검토기간은 2주이고, 검토의견은 자문회의 개최 2일 전까지 제출하면 된다. 그런데 검토의견이 꽤 많았다. 회의 2일 전에 검토의견을 주면 설계사들이 반영할 시간이 모자랄 듯싶었다. 4일 만에 서둘러 검토의견을 작성해 이메일로 보내 주었다.

  검토의견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본 안건은 국토부 훈령 ‘공공건설공사의 공사기간 산정 기준’을 적용하는 사례로서, 향후 발주될 공공건설사업의 중요한 선례가 되어, 국내 건설산업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므로, 높은 완성도가 보증되어야 한다고 전제했다. 그리고 공사기간 계획서에서 시공계획, 주요 공종 작업수행, 비작업 일수 산정, 공사기간 산정 등은 확인할 수 있지만, WBS를 확인할 수 없으며, 예정 공정표가 엑셀로 만든 바차트이고, 로직들이 부정확하게 표현되어, 전체 공사의 흐름과 주 공정선(Critical PathㆍCP)의 적정성 검토가 어렵다고 했다. 그러니 시설별 WBS를 제시하고, WBS를 기준한 Activity를 만든 다음, CPM 네트워크를 만들어 주 공정선의 공기 적정성과 시설물별 주요 Interface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검토의견을 보낸 다음 발주자의 움직임을 살폈다. 대단히 진지했고 책임감이 충만했다. 변화의 트리거 같았다. 검토의견을 제출하고 열흘 후 자문회의가 열렸다. 자문위원들은 모두 공정관리 이론과 경험이 풍부한 분들이셨다. 마음이 놓였다. 토목 분야부터 검토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토목 분야는 자문위원 검토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토목공사는 CPM 공정관리를 하지 않으며, 바차트 공정표로 충분하다고 했다. 머리를 한대 쥐어박힌 듯했다. 그래서 토목공사는 작업 순서와 관계없이 공사해도 되냐며 반문하면서, CPM 네트워크의 주 공정선이 나와야 적정 공기를 판단할 수 있지 않느냐며 강하게 질책했다. 결국 토목 분야는 WBS와 CPM 공정표를 제대로 만들어 적정 공기를 제시하는 것으로 조건부 채택했다. 전기통신 분야 역시 검토의견을 반영하지 않았다. 토목과 병행되기 때문이며 CPM을 잘 모른다고 했다. 토목과 같이 WBS와 CPM 공정표를 만들어 적정 공기를 제시하라며 조건부 채택했다. 마지막으로 건축 분야였다. 처음 제출한 자료는 가장 부실했지만, 열흘 동안 검토의견을 충실히 반영한 공사기간 계획서를 발표했다. 제대로 구성된 WBS, WBS를 기준한 Activity 목록, Activity ID 번호체계, 주 공정선이 표시된 CPM 공정표, 그리고 공기를 기준한 S-Curve까지 만들어 전체 공기가 적절하게 배분되었는지 확인했다. 건축 분야는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자문회의 내내 발주자의 표정은 단호했다. 국토부 훈령을 충실하게 이행해서, 타 공공기관이 참조할 수 있는 모범사례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자문회의 보름 후, 토목・전기통신 분야 설계사로부터 갑자기 연락이 왔다. 자문회의 결과를 반영한 공사기간 계획서를 재작성했다며 검토를 받겠다는 것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조건부 채택인데 발주자가 결정해도 될 듯 싶었기 때문이다. 토목・전기통신 분야가 다시 작성한 공사기간 계획서를 살펴보니, 건축 분야와 동일하게 WBS, Activity 목록, 주 공정선이 표시된 CPM 공정표를 만들어 적정 공기를 산출했다. 만족스러웠다.

  발주자는 이번에 작성한 공사기간 계획서를 책자로 만들어, 타 공공기관이 참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건설선진국이 그러하듯, 사업관리 성공 경험이 풍부한 공공의 발주자가 변화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왠지 우리 건설업이 한 단계 도약하는 느낌이다. 좋은 징조다.

 

김선규(강원대학교 건축토목환경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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