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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날마다 처음
기사입력 2019-07-17 07:00:09.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처음’이란 말보다 ‘첫’이란 말이 더 좋다. 명사와 관형사의 차이일까. 첫인사, 첫사랑, 첫키스, 첫눈. ‘첫’만 붙으면 설레고 아름다운 단어가 된다.

 나는 첫사랑을 하기 전까지 사랑이 뭔지 몰랐다. 아, 물론 ‘첫’이니까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사랑이 무언지 정의할 수 없었으니 하는 방법 역시 몰랐다. 아주 오래 전, 나의 첫사랑. 그는 진실했고 젠틀했다. 그와의 첫사랑이 끝나는 것을 감지했을 때쯤 나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그 사랑을 붙들려고 했다. 사랑이 끝나는 것이 두려웠다. 실패하는 것이 싫었다. 사랑이 끝난 후 겪어야 할 감정들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최초로 유포한 사람을 경멸하며 보란 듯 첫사랑에 성공하고 싶었다. 그것은 사랑에서 집착으로 변질되기 시작했고 나는 거짓과 위선, 이기심으로 떠나려는 사랑을 구속했다. 결국 첫사랑은 초라하고 지저분하게 변하는 나를 떠나고 말았다. 아주 신사답게. 그래서 더 비참했던.

 나는 그렇게 관계에 대해 알게 되었다. 거짓과 변명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게 만든다는 것을, 자존감이 없는 사람이 주로 그렇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첫사랑에 실패한 뒤로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친하고 깊은 사이일수록 더 그렇다. 내가 말하는 진실 때문에 사람이 떠나도 어쩔 수 없다. 어차피 거짓으로 이뤄낸 관계는 오래가지도 못하고 그 상처는 고스란히 내 몫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아보니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비단 사랑뿐만은 아니었다. 많은 걸 배운 ‘첫’들의 실패를 통해 나는 인생을 배웠다. 그것은 타인을 이해하는 아량을 가지고 왔다. ‘첫’ 실수에 대해 용서를 베푸는 사람이 되었고, ‘첫’ 발을 내딛는 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었으며, ‘첫’ 실패를 한 사람에겐 그 경험이 가져올 혜안에 대해 말해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처음은 누구에게나 관대하지 않던가. 심지어 범죄자들에게도 ‘초범’이 감형의 기준이 되기도 하던데.

 나는 늦은 나이에 처음으로 오로지 나만을 위한 삶을 살고 있다. 얇고 흔들리는 꿈이라는 다리 위에서 의연해지려고 애쓰며 매일 쓰고 읽는다. 그저 버티는 삶일지도 모른다. 불안하고 두렵고 막막하지만 ‘첫’이란 그런거니까. 이 삶이 실패로 끝나더라도 그것 역시 ‘첫’이니까 괜찮을 것이다. 모든 인생은 날마다 처음이다. 우리는 매일 처음을 산다.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십대도 육십대도 오늘은 처음인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당장 무엇을 시작하더라도, 그 무엇을 실패하더라도 모두 처음이니 아무렴 어떨까.

 

이은정(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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