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홈 뉴스
[시론] 까칠한 사람이 더 쉽다
기사입력 2019-07-19 07:00:11.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30대 중반, 회사의 중간 간부로서 한창 기개 있게 일할 때 일이다. 맡은 일을 깔끔하게 해치우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이 없던 시절, 뜻밖에 복병이 나타났다. 임원 한 분이 새로 왔는데 성격이 얄망궂고 주장이 갈팡질팡이어서 도대체 종잡을 수 없었다.

 그날도 정성들여 다듬어 올린 서류를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엉뚱한 심술을 부리면서 퇴짜를 놓았다. 나는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얼굴은 붉으락, 걸음은 쿵쿵, 입술은 실룩거리며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런 나를 지켜보던 B선배가 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메모지에다 조용히 네 글자를 썼다.

 난사이열(難事易悅). 그리고는 빙긋이 웃으며 “그런 까칠한 사람에게 인정받기가 훨씬 쉬운 법이지”라며 글자를 한 자 한 자씩 톡톡 쳤다.  이 말은 <논어>에 나오는, 소인은 모시기는 어려우나 그를 기쁘게 하기는 쉬우며, 군자는 모시기는 쉬우나 그를 기쁘게 하기는 어렵다는 구절에서 따온 말이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곰곰 생각해 보았다. 이후 나는 그 임원으로부터 드물게 인정받는 간부가 되었는데, 그 분께 올리는 문서에는 법률이나 규정을 첫 머리에 떡 하니 올려 놓고 시작하면 만사형통이었던 것이다.

 정말 그랬다. 생각이 깊고 인품이 원만한 사람은 우선 대하기는 편하나 그로부터 인정을 받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 하지만 성격이 까칠하고 모난 구석이 있는 사람은 당장 모시기는 힘들지만, 일단 그 까칠한 면만 공략하면 칭찬받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다.

 소인은 시야가 좁고 시비 걸기를 좋아하며, 관심이나 재능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큰 것은 쉽게 넘어가면서도 사소한 것에 의외로 집착하는 성향이 있다. 이를 나쁘게 보아 까칠한 사람이라 폄하하기도 하나 좋게 보아 개성이 뚜렷한 사람 중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소인이라는 호칭은 안 좋은 면을 부각시켜 붙인 일종의 낙인 같은 것이다.

 우리가 아는 위대한 인물들 중에는 뜻밖에 소인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오히려 생각이 합리적이고 깊은 이해력과 넓은 포용력으로 두루두루 원만한 군자의 면모를 갖춘 이는 석가모니나 공자님 같은 성인의 반열에 든 사람 외에 세속적으로 크게 성공한 이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여기 어느 면으로 보나 소인밖에 되지 않는 두 사람의 영웅담이 있다. 한 명은 패현이라는 시골 마을의 백수건달 출신이었고, 다른 한 명은 귀족 가문 출신이긴 하나 역발산의 기개 외에는 별 재주가 없는 성질만 급한 장사였다. 유방과 항우가 그들이다. 유방은 얼핏보아 무던한 성격의 소유자인 듯하나 사마천이 <사기>에서 묘사했듯이 매일 놀고 먹기를 즐겼으며 호언장담하기 일쑤였고 술과 여자를 밝힌 놈팡이였다. 그는 항우와의 전투에서 수십 번을 패했지만 그때마다 비굴하고 뻔뻔하게 잘도 도망갔다. 반면 항우는 직선적이고 우쭐대는 성격에다 예사로 남을 깔보았다. ‘홍문의 연회’에서 유방을 죽일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가 있었으나 그를 얕잡아 보아 놓쳐버린다. 그리고는 단 한 번 ‘오강 전투’에서 패하자 자결하고 만다. 두보가 ‘권토중래(捲土重來)’하지 않고 성급히 포기한 것을 안타까워한 시를 남겼을 만큼 뒷생각이 없었다.

 두 소인배의 승패가 갈린 것은 참모들의 보스에 대한 보필 방법이었다. 천하의 전략가 장량은 늘 유방의 자존심을 살려주면서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함으로써 그것을 받아들이게 하였다. 항우에게도 장량 못지 않는 범증이란 뛰어난 책사가 있었다. 하지만 범증은 그의 감성적 성격탓에 항우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음으로써 종종 갈등을 빚었고 결정적인 기회에 그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장량은 ‘난사이열’을 실천함으로써 소인 유방으로 하여금 천하의 주인이 되게 하였으나, 범증은 소인 항우를 군자인 듯 여겨, 쓴 보약을 당의정 없이 들이밀어 그를 질겁하게 함으로써 허무하게 무너지게 했다

 사회생활이 어려운 건 8할이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 때문이다. 그리고 조직에는 그런 고약한 사람이 한 두 명은 꼭 있기 마련이다. 어느 날 이런 이야기를 딸내미와 하다가 “나는 참 운 좋은 사람인가 보다, 지금까지 회사생활을 해 오면서 그런 힘든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았으니까” 했더니, 우리 똘망이는 갑자기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 했다. “이를 어째, 우리 아빠가 어느 조직에서나 한 사람씩 있는 그런 괴팍한 사람인 줄 몰랐네…”

 돌아보면 나는 정말 일당백(一當百)의 능력 있고, 뼈가 없는 듯 성격 좋은 분들과 일해 왔음에 고마움을 느낀다. 주위에 온통 착한 분들만 있었던 것은 나 자신이 바로 그 애물이어서 그랬던 것이다. 이제사 깨닫다니, 참으로 민망한 일이다.

 

권재욱(건원건축 부회장)

 

〈건설을 보는 눈 경제를 읽는 힘 건설경제-무단전재 및 배포금지〉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건설경제i' 앱을 다운받으시면
     - 종이신문을 스마트폰과 PC로 보시고 실시간 입찰정보도 보실 수 있습니다.
     - 명품 컨텐츠가 '내손안에' 건설경제i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 구글
팝업뉴스 닫기
로딩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