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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하모니카를 닦으며
기사입력 2019-07-23 07:00:09.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바닷가에서 후배와 함께 차 한 잔을 나누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도시전철 안은 퇴근시간과 겹쳐 붐비기 시작했다. 그때 뒤쪽에서 느릿느릿, 그러나 애절한 노래 소리가 다가왔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묵직한 바리톤 색깔이었다. 돌아보니 노래를 부르는 남자의 얼굴 위로 순간 굵은 십자가가 번쩍였다. 무슨 조화지? 다시 보니 이마와 코, 턱, 양쪽 볼에 나 있는 흉터가 불빛에 반사되었다.

 ‘원 달러!’ 홀린 듯 중얼거리며 지갑에서 천원을 꺼내 남자의 작은 소쿠리에 넣었다. 후배도 따라 ‘원 달러?’ 하더니 천원을 넣었다. 남자는 우리 앞에 멈춰 서서 노래를 끝까지 불렀다. ‘내 동무 어디 두고 이 홀로 앉아서’ 하마터면 남자의 곁에 나란히 서서 함께 노래를 부를 뻔 했다. 그는 느닷없이 나를 흔들어 놓은 별이었다.

 해질 무렵이면 늘 부르는 노래 몇 곡이 있는데 ‘형제별’과 ‘고향생각’ ‘메기의 추억’이다. 다 절절하고 애틋한 곡들이다. 삼남매 중 막내인 나는 나이 차가 많은 오라버니와 언니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여름밤이면 우리 삼남매는 마당에 멍석을 펼쳐 놓고 누워 쏟아지는 별들에 이름을 만들어 붙였다.

내가 태어날 때 고등학생이었던 오라버니는 객지에 나가 공부를 했기 때문에 자주 볼 수는 없었지만 방학 때면 언니와 나를 앉혀 놓고 휘파람이나 하모니카를 불어주었다. 20여 년 전 내 든든한 후원자였던 언니가 먼저 떠나더니 몇 년 전엔 오라버니마저 먼 곳의 별이 되었다. ‘날 저무는 하늘에 별이 삼형제 반짝반짝 정답게 비추이더니’ 형제별은 이제 나 하나만 남았다.

 불 줄도 모르는 하모니카를 하나 샀다. 아득한 오라버니의 하모니카 소리를 소환해 음을 찾아 불어보지만 노래는 안 되고 눈물만 흐른다. 이탈한 음들 사이사이 그립고 아득한 이름들이 딸려 나와 나를 흔든다. 그리운 것들은 늘 먼 곳에서 반짝거린다. 그렇게 우리 형제별은 천상과 지상에서 서로를 비춘다.

 외출할 때나 여행할 때 가방에 하모니카를 챙겨 넣는다. 아직 어디에서 꺼내 불어본 적은 없지만 어둠이 내리는 낯선 동네 어귀나 이국의 모래 언덕에 기대앉아 문득 꺼내 불지도 모른다. 서툴면 어떤가. 노래가 좀 되지 않으면 어떤가. 오늘도 그리움은 별이 된 이름들을 만지며 하모니카를 닦는다. 

 

권애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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