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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지방에서 로컬(local)로
기사입력 2019-07-24 07:00:11.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지역 연구자로 전국 읍ㆍ면ㆍ동을 제법 많이 돌아다녔다. 각 지역 간 차이가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남은 기억은 지방이라는 이름의 유사성이다. 특히 인구 10만 이하 시ㆍ군의 경우 인구 구성도 비슷하고 직업군도 유사하여 비슷한 의사결정 구조를 가지게 되므로 아주 유사한 정책적 결과물들을 만들어낸다. 비슷한 경로(path)가 만들어진 상태에서는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이 생기기 때문이다.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은 한 번 일정한 경로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그 경로가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그 경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성을 의미한다. 혁신은 이러한 기존 경로를 깨는 것인데 강한 경로 의존성은 새로운 정책적 시도조차 기존 경로의 틀 내에서 작동하게 한다.

  현실적으로 혁신을 통해 기존 경로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데 흔히 국내에서 이런 경로 깨기에 많이 동원되는 것이 해외 사례이다. 그런데 그 해외 사례라는 것도 해당 지역의 경로 내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국내에 도입한다고 해도 다른 경로를 가진 상태에서는 동일한 결과를 낼 수 없다는 점을 쉽게 간과하는 듯하다. 그렇다고 지방 소멸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한 마당에 지속가능한 지역발전에 대한 고민을 안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역발전 투자협약은 프랑스 계획계약 제도의 한국형 버전으로 지방정부가 지역발전을 위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중앙정부는 안정적인 예산을 지원하는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협력 모델이다. 각 지역에서 실제로 필요한 사업들을 지자체가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다수의 부처가 연계하여 포괄보조 형식으로 지원함으로써 안정적인 사업 추진이 가능하다. 물론 한국형 버전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프랑스의 계획계약제도와 지역발전 투자협약은 여러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올해 시범사업을 시행중에 있는데 시범사업의 경우 시ㆍ도별 2개 이내의 사업계획을 제출하여, 균형위에서 서면 심사와 현장 실사 등의 절차를 거쳐 11개 사업을 최종 선정하였으며 선정된 사업은 3년간 총 100억 원 내외의 국비가 지원될 예정이다. 그리고 포괄보조 형식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예산 구조의 틀 내에서 시행되기 때문에 실제 집행은 주관부처와 협조부처로 구분되어 있다.

  새로운 지역발전 정책으로서 지역발전 투자협약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국가 지원사업 이후에도 자생할 수 있는 지역 기반을 조성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지적하고 하고 싶은 것이 계약당사자이다. 지방자치와 시민참여의 역사가 오래된 프랑스의 경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계약만으로도 지역 내 다양한 실행 과정을 통해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겠지만 매우 유사한 경로들을 가진 한국의 지역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기존 경로에 진입하지 못하는 주체들이 있을 수도 있고 심지어 기존 경로가 새로운 행위자들의 진입을 막을 수도 있어서 정책의 효과에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외에 지역 내의 다양한 공공 또는 민간 주체들을 직접적인 계약당사자로 포함시키는 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부처  간, 지자체 간, 공공과 민간 간의 경계를 허무는 커뮤니티 기반 지원 방안이어야 지속가능할 수 있다.

  지방 소멸이라는 메타포는 기존 경로 의존성의 결과이다. 따라서 심각하게 현재 구축되어 있는 발전 경로들의 변화를 고민할 때이다. 가장 쉬운 기존 경로를 깨는 방법은 혁신을 이룰 주체를 발굴하거나 육성하는 것이다. 봉건사회에서 자본주의로의 전환 과정에서 이들 혁신가들의 이름은 기업가였다. 현재 시점에서 혁신가는 기업가라는 이름보다는 좀 더 다양해질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주목받는 이들이 사회적 기업가, 로컬 크리에이터, 라이프스타일 스타일러라 불리는 이들이다. 이들은 완성형 지역개발계획보다는 과정형인 커뮤니티 디자인 또는 로컬 디자인을 강조한다. 또한 공청회와 공람 같은 일방향 의견 청취 방식이 아니라 해커톤, 라운드 테이블, 리노베이션 스쿨 등 양방향 소통과 실행의 중요성을 강조 한다.

  지방 소멸에 대응하는 또 다른 메타포로서 로컬이 답이 되기 위해서는 로컬의 의미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로컬은 우리말로 지방을 뜻하지만 ‘현지의, 특유의, 국지적, 장소적’이란 의미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수도권 이외 지역을 의미하는 지방이라는 단어와는 구별될 수 있다. 모든 지방이 각각의 개성과 로컬리티(locality)를 가진 로컬(local)이 되어야 기존 경로의 산물인 지방 소멸이라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고 지속가능한 균형발전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김륜희(토지주택연구원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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