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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미래사회 선도하는 전화위복 계기로
기사입력 2019-08-01 07:00:19.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아주 먼 옛날, 지구 동쪽 끝 경기장에서는 서로 다른 고장에서 온 선수들이 편을 나눠 가죽주머니에 바람을 넣어 만든 공으로 상대방이 세우고 있는 깃대를 맞추는 경기를 하고 있었다. 흡사 오늘날의 축구 경기와 비슷했다. 경기를 보기 위해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었고, 열심히 뛰는 선수에게는 환호를 보내주었다. 양 팀에는 선수들의 경기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감독도 있었고, 반칙을 잡아내며 질서를 잡아주는 심판도 있었다. 환호하는 관중들에 부응해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고, 관중들은 비싼 관람료 내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초기에는 일찍 경기에 참여한 동쪽 선수들의 실력이 월등했다. 이들을 응원하는 관중도 훨씬 많았고, 늦게 경기에 뛰어든 서쪽 선수들은 실력 차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기기 위해 절치부심하던 서쪽 선수들은 동쪽 선수들이 신고 있는 신발이 경기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걸 알았다. 서쪽 선수들은 재빨리 동쪽 선수들을 통해 신발을 사서 신으며 열심히 뛰었다. 이제 서쪽 선수들은 동쪽 선수들과 대등하거나 어떤 면에서는 더 뛰어나게 되었다. 게다가 감독도 민주적으로 뽑는가 하면, 평소 원수같이 지내던 북쪽 동생과의 사이도 그런대로 좋아졌다.

  한편,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에 일부 몰지각한 동쪽 사람들이 서쪽 지역에 들어와 행패를 부려 큰 피해와 마음의 상처를 입힌 적이 있었다. 서쪽 사람들은 사과와 배상을 요구했으나 동쪽 지역 사람들은 요지부동이었다. 경기에서도 지고, 사회적인 열등감에 시달려 심기가 불편해진 동쪽의 감독은 엉뚱하게도 동쪽 선수들이 서쪽 선수들에게 신발 파는 것을 막고 나섰다. 별 생각 없이 신발을 사고팔아  왔던 동쪽과 서쪽의 선수들은 당황하며 전전긍긍했다. 서쪽 감독과 선수들도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어 대책 마련에 고심했으나 사후약방문 격이었다.

  안이하게 대응해 온 서쪽 지역의 감독과 선수들, 그리고 눈앞의 이익만을 쫒으며 독단으로 감정적 결정을 한 동쪽의 감독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관중들은 이미 기존 경기 방식에 식상해 있었다는 것을. 경기가 과열되어 반칙이 난무했지만 심판은 무기력했고, 결국 힘이 센 선수가 주도해 경기는 재미가 없어졌다. 이제 관중들은 선수들이 협력하는 더 재미있는 경기 방식을 요구하게 되었다. 하지만 양쪽 감독과 선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새로운 방식에 대한 열망을 외면했고, 실망한 관중들은 감독과 선수를 모두 교체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장치의 생산에 필수적인 핵심소재들의 수출을 일본 정부가 가로막고 나섰다. 게다가 무역심사 과정에서 특혜를 제공하는 안보 우호국 지위의 화이트 국가에서도 제외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일본의 이 같은 조치에 대한 이유와 장기화될 때의 영향, 그리고 향후 대책에 대한 분석과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대목이 있다.

  먼저, 우리가 일본을 제치고 메모리 반도체 생산 선두자리를 차지한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지만, 연관 산업은 여전히 일본에 종속돼 있고 핵심 소재를 그들 제품에 전적으로 의존해왔다. 품질 개선과 비용 절감을 위해 경쟁 체계를 도입한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그러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다. 혹시 다른 분야는 문제가 없는 걸까? 국가가 첨단 부품소재 산업의 육성을 게을리했다고 꼬집는다. 물론, 그랬더라면 이런 사태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 기간 외국 기업과 은밀한 거래를 하며 대안을 마련하지 않은 해당 기업의 책임이 크다.

  한편 일본의 이번 조치로 우리의 피해가 절대적으로 클 것이라는 전망이다. 첨단 부품소재 산업의 육성과 지원의 필요성이 들끓고 있지만, 이번 기회에 우리 산업구조를 냉정하게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국내총생산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일본이 20.7%인 반면 우리는 27.6%로, 주로 대기업에 의존하는 우리에 비해 일본은 70%를 중소, 중견기업이 떠받치고 있다. 우리는 반도체와 자동차 등을 수출해 벌어들인 외화를 대부분 에너지 수입에 쓰는 실정이다. 내실이 없단 얘기다. 고부가가치 미래 신산업의 발굴과 육성을 통한 산업구조 개편이 절실한 이유다.

바야흐로 지금은 글로벌 시대다. 세계 시장의 50~70%를 차지하는 우리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 일본은 물론 국제적인 공급망의 혼란과 경기불황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제 한 나라 정부가 자국의 산업을 좌지우지하던 시대는 지났다. 우리 사법부의 과거 강제징용 배상 결정에 반발해 일본 정부가 내민 보복적 산업통제 시도는 결국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시대착오적 카드였다. 국제사회 리더로서 신뢰와 자격을 잃은 것은 두고두고 그들의 뼈아픈 상처가 될 것이다.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로 미래사회를 선도하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일이다.

이태원(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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