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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현실 괴리된 적정임금과 발주자 직불
기사입력 2019-08-06 07:00:11.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문재인 정부 들어 건설근로자 보호 대책이 힘을 얻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발주자의 임금 직불과 적정임금이다. 근로자 보호는 시대적으로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그런데 현 정부의 대책이 과연 건설근로자를 보호하는 데 실효성이 있는지, 사회적으로 다른 파급효과는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발주자의 임금 직불 제도는 체불 방지가 주목적이다. 그런데 실무적으로는 난점이 많다. 우선, 발주자가 임금을 직불하려면 근로자의 인적 사항이나 통장계좌가 수집되어야 한다. 그런데 건설근로자 가운데는 통장 개설이 어려운 신용불량자가 많다. 비공식적으로 10만명을 넘는다고 한다. 또 외국인 근로자는 통장 개설이 불가능한 사례도 많다. 결국 제3자 명의로 통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는 실제 근로자와 서류상 근로자가 다르게 되는 현실을 초래한다. 그 결과, 세무 신고나 4대 보험 및 퇴직공제금, 산재사고 처리 등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결국 임금 체불을 막기 위한 제도가 또 다른 임금 체불을 유발하거나 불법 행위를 부추기는 제도로 전락할 수 있다.

  더구나 근로자가 현금으로 노임 지급을 요구하더라도 시공자 측은 법령 위반은 물론 사후 증빙이 어렵기 때문에 제3자 명의로 통장 개설을 요구하게 된다. 결국 근로자를 위한 제도가 역으로 근로자를 힘들게 하는 규제로 작용한다.

  일부에서는 신용불량자나 불법체류자를 고용하지 않으면 된다고 반문한다. 그러나 건설업은 일자리의 최후 보루이고, 인력도 부족하다. 난공사나 오지(奧地)일수록 불법체류자 없이는 공사 수행이 어렵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수천 혹은 수만 명의 통장으로 일일이 노무비를 입금하려면 발주기관이나 시공사 모두 과도한 행정력의 낭비를 초래한다. 노무비를 개별 통장으로 입금하면, 작업반장이나 ‘오야지’의 통솔력이 약화되고, 이는 현장관리가 어려워지는 현실을 초래할 수도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조달청을 비롯하여 서울시, 경기도, 여주시, 화성시 등 발주자별로 제각기 전자대금지급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시공자로서는 개별 발주자별로 상이한 전자대금지급시스템을 숙지해야 하는 불편이 초래된다.

  선진국의 경우 노임을 발주자가 직불하는 사례는 흔치 않다. 발주자는 임금이나 자재대금 등의 체불에 대비하여 원도급자에게 지급보증(payment bond)을 요구하고, 원도급자는 하도급자에게 모든 노임이나 장비대금을 정산했다는 증서(affidavit)를 받거나 각종 증빙자료를 확인한 후 하도급대금을 정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임금 체불에 대해서는 지급보증이나 정산시스템을 강화하고, 시공사의 경영상태 평가를 강화하는 것이 정공법이다. 발주자의 노임 직불은 저가 낙찰 등 임금 체불이 우려되는 현장으로 한정해야 한다. 또, 근로자가 원하는 경우 현금 지불을 허용해야 한다.

  또 다른 정책 수단인 적정임금제도 속도를 내고 있다. 적정임금제란 건설근로자의 임금을 발주자가 설계에서 정한 금액 이상으로 지급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최근 LH 등에서 실시한 시범사업 결과를 보면, 설계가격에 반영된 노무비를 삭감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면서 낙찰률이 5% 내외 상승했다.

  건설현장의 반응을 보면, 노무비가 상승한 것이 아니라 현실화되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는 입장이다. 국내 숙련공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도 노무비의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그동안 외국인 근로자가 급증했던 가장 큰 이유가 노무비 삭감에 의한 가격 경쟁이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무비의 적정화는 바람직하나, 적정임금을 획일적으로 정하고 그 이상으로 지급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시장경제에 부합하지 않는다. 기능공의 숙련도나 생산성에 따라 건설노임이 달라지는 것이 상식적이기 때문이다. 또 용어는 적정임금인데 사실상 최저임금으로 기능한다. 매년 시중평균임금을 조사하고 그 이상을 지급하도록 강제한다면, 임금이 크게 상승하는 구조가 된다. 결국 발주자가 그 부담을 떠안지 않는다면 시공자는 심각한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서구 사례를 보면, 실비정산(cost reimbursement) 방식이 있다. 이 방식은 근로자임금과 더불어 하도급비용이나 자재비 등을 직접 정산하고, 그 위에 시공자의 공사관리 수수료(fee)을 덧붙이는 방식이다. 실무적으로는 계약 시에 최대보증금액(guaranteed maximum price)을 설정하기 때문에 예산 낭비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끝으로 기능인력의 부족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선진국도 대부분 겪고 있는 문제이다. 즉, 단순히 임금이 높아진다고 해서 신규 기능인력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국내에 장기 체류 중인 외국인력을 귀화시키거나 불법체류자를 양성화하는 것이 더욱 현실적이다. 기능인력의 커리어패스(career path)를 구축하여 전문건설업자로 육성하는 방안도 현실적이다. 발주자의 노임 직불이나 적정임금 제도가 또 다른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없는지 검토하고, 경직성을 탈피한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최민수(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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