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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그때 내가 여기 이렇게
기사입력 2019-08-09 07:00:16.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긴 줄 끝에서 아내 뒤를 이어 마지막으로 버스에 오른다. 서 있기도 힘들 만큼 승객으로 꽉 찬다. 휴일 오후에 남한산성 주차장에서 산성역으로 가는 버스는 언제나 등산객들로 만원이다. 차가 구불구불 산허리를 돌아갈 때면, 서 있는 사람들이 이리저리 쏠려서 빽빽하게 들어찬 버스 안에 조금씩 숨통을 터준다.

    “경기 변동 주기라는 게 있거던.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었어.” 무슨 긴 이야기 끝인지는 몰라도 약간 쉰 듯한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다. 아주머니들의 수다와 웃음소리 사이로 유별나게 큰 육성이다. 만원 버스 속에서는 시끄러운 소음을 뚫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인지 모두 목청을 높인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하는 말이어서 더욱 크게 들리는 것 같다. ‘어떤 분일까?’ 뒤돌아보고 싶지만 듣기만 한다.

  “직원들 복지문제는 내가 끝내줬지.” 졸가리 없는 어휘들이, 유리창을 꼭 닫은 만원 버스 안에서 숨 가쁘게 날아다닌다. 몇 번 참다가 결국 뒤로 한 번 돌아본다. 색 바랜 등산조끼를 입은 할아버지다. 눈빛이 형형하다. 옆에 앉은, 비슷하게 나이 든 할아버지는 듣고만 있을 뿐 아무 말이 없다.

  아흔 살이 가까울 성싶은 할아버지는 어떤 회사의 높은 자리에 있었던 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별수 없이 그분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다 들어야 하는 내 귓속 달팽이관이, 휘몰아치며 흘러가는 세월의 바람소리라도 듣는 듯 갑자기 울적하다고 한다.

  원래 그분은 말수가 적고 겸손하며 차분해서 직장에서는 모든 직원으로부터 존경받는 어른이었는지 모른다. 지금은 늙을 만큼 늙어버렸다. 어디에 대고 말하고 싶고 말하지 않으면 어떤 흔적도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을까. 술이 좀 취한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그는 자신에게 있는 무엇인가가 조금씩 사라져 간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다. 옛날의 권위와 명성이 떨어져 나가고 스스로 지키려 애쓰던 건강마저도 점점 야위어가고 말았다. 그것을 안다. 그래서 큰 소리로 말하고 싶은 게다. “그때의 내가 여기 이렇게 있다.”

  20~30미터 가다 서기를 계속하던 버스는 산성을 거의 내려왔는지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달리는 차 속에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는다. ‘존재와 흔적’, 이 무거운 어휘에 나는 깊이 빠져 있고, 버스는 산성을 가볍게 내려오고 있다.

 

최종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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