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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늙음의 템포
기사입력 2019-08-14 06:00:18.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약국에서 파스를 사서 나오는 길에 엄마 전화를 받았다. 약국엔 무슨 일이냐 묻는 엄마한테 요즘 별스럽게 어깨가 뻐근하다고 어리광 같은 푸념을 쏟았다. 엄마는 걱정어린 목소리로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했다. 거기까지만 해야 했다. 치과는 한 달째 다니고 있고, 눈이 침침해서 아무래도 안경을 맞춰야 할 것 같다며 덧거리 응석을 곁들이고 말았다. 무언가를 계속 씹고 있던 엄마는 태연무심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그렇게 갑자기 늙는 거야.”

나는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귀를 의심하고, 휴대폰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기계를 의심했다. “어머니, 방금 소녀에게 하신 말씀을 다시 해 보시겠어요?” 웃음보가 터진 엄마는 먹던 음식이 사레가 들렸는지 캑캑 바튼 기침을 했다. 그 와중에 기어코 같은 대답을 하는 엄마가 야속했다. “그렇게 갑자기 늙는다니까.”

모든 생명, 모든 늙음이 눈 내리듯 조금씩 내려앉아 불식간에 쌓이는 줄만 알았다. 갑자기라니! 어쩌면 그 말이 사실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문득 거울에 비친 흰머리 한 가닥에 동공은 귀신을 본 듯 확장했고, 어제도 먹었던 사과였는데 오늘 베어 물었더니 갑자기 치아 밑동이 빠질 듯 시렸으며, 문자메시지라도 읽을라치면 어느새 휴대폰 화면을 콧등 앞까지 끌어당기는 나를 발견했다. 모두 전에 없던 일이었다. 늙어가는 제 모습을 인지하기도 전에 이미 늙어버린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다.

태어남과 동시에 늙어야 하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일이거늘 늙어가는 것이 사는 것과 매한가지임을 모르고 살았다. 나는 계속 늙고 있었고, 엄마도 계속 늙고 있었고, 엄마는 늙었고, 나도 어제보다 늙었다. 늙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부터 사소한 모든 장면들이 늙음을 대변하는 것 같아 서글퍼졌다.

천하통일을 하고 세상을 호령했던 진시황도 늙어감은 어쩌지 못해 불로초를 얻고자 했다. 허망한 불로장생의 믿음. 결국 그는 49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그러니까 그는 내 나이 즈음에 늙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했을 게다. 늙는다는 것은 죽음을 담보하고, 죽음은 곧 소멸이니 천하를 가진 자에게 그보다 무서운 순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저 아름답게 늙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늙음의 템포를 인간이 정할 수 없다면 더욱 인생을 돌봐야하지 않을까. 아무날 아무시에 불현듯 찾아올 생의 마지막 순간을 너그럽게 맞이하고 싶다. 그러니 오늘도 열심히 살 도리밖에. 내일이 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오늘을 값지게, 오늘이 생의 마지막이 아니었던 것을 감사히 여기면서 말이다.

 

이은정(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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