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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흔들어 깨운 까닭은
기사입력 2019-08-19 06:00:19.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새벽이 오려면 두어 시간이 남았는데 잠에서 깨곤 한다. 서너 시경에 한번 깨면 잠들지 못하고 뒤척인다. 그래도 잠을 청해 보지만 헛수고일 뿐, 정신만 더 말짱해진다. 그런 횟수가 차츰 늘어간다.

이즘 미련과 회한이 자꾸 밀려온다. 이젠 그동안 뉘우침은 지우고 아쉬움은 잘라내며 앞날만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는데, 그게 말처럼 쉽게 되는 일이던가. 이순을 넘겨 중반에 이른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연치가 비슷한 이들에게 물어보니 뜻밖에도 비슷한 경우가 많다. 일찍 일어나 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다는 이도 있고, 어떤 사람은 그저 눈감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뒤척이다 아침을 맞이한다는 자도 있으며, 잠을 늘이려고 일부러 늦게 잠자리에 든다는 지인도 있다.

왜 이른 시각에 잠이 깨는 걸까. 저녁에 커피를 멀리하기도, 숙면에 좋다기에 낮에 햇볕을 잠깐 쬐어보기도, 낮잠을 삼가기도 해보았지만 그도 별 효과가 없다. 결국 무언가에 대한 강박관념일지도, 삶에 대한 초조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다. 하긴 왜 없겠는가마는, 그래도 살아온 세월에 익숙해졌으니 더 느긋해져야 할 게 아닌가.

차라리 바꿔볼까. 예전의 잠을 되찾기보다는 새벽 그 시간을 어찌 맞고 보내야 할는지를 생각해 봐야겠다. 잠은 짧은 죽음,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죽음으로부터 잠시 빌려온 가사상태이지 않은가. 그 시간이 조금 줄어들었다고 걱정할 필요가 있겠는가. 일찍 깨어나 활동하는 것은 살아간다는 증거가 아니랴. 단잠을 놓쳤다고 투덜댈 일만은 아니라는 분별에 이른다.

잠은 생의 절반을 훔쳐가는 도둑이라는 말이 맞지 싶다. 잠을 줄이면 그만큼 생명은 더 길어질 터이다. 하루의 시작인 새벽 길목엔 외려 깨어있어야겠다. 이 새벽에 찾아올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잠을 깨운 것은 새로운 무엇인가를 찾으라는 누군가의 손길일 수도 있겠다. 잠자리에 드는 일은 내 의지지만 어둑새벽에 잠이 깨는 것은 신의 뜻일는지도 모른다. 신은 잠의 나태한 더께를 걷어내기 위해 어둑새벽에 내 영혼을 흔들어 깨웠으리라.

누구든 생명의 단독자다. 절대 실존의 입장에서 보면 생명은 혼자 생을 꾸려가다가 홀로 마지막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처하려면 생명은 끊임없는 갱신의 욕망이 필요하리라. 그렇지 못하면 오늘이 새롭지 않을 것이며 내일은 무력하게 세월에 묻혀 흘러갈 뿐이다. 이젠 이른 새벽에 잠이 깼다고 불평하지 않으리라.  

 

정태헌(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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