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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가깝고도 먼 양심
기사입력 2019-08-21 07:00:11.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할 때,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어. 진심으로 뉘우치고 반성하면 그것을 계기로 더 발전할 수 있는 거야. 성의 없이 한두 마디 하고는 됐다고 하면 안돼”라고 말한다. 이 당연한 말이 아이들에게만 적용되고 어른들의 세상에서는 다를까. 자기보다 약한 사람 앞에서는 절대 인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국가 간에는 보편적 진리나 도덕이 적용되지 않는 것일까.

우리가 어릴 때는 일제 강점기를 직접 겪은 어른들의 정서와 상처가 아이들에게도 반영되어 일본은 얄미운 나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높은 기술력과 경제력, 준법정신, 합리적인 사고를 본받을 만하다고, 일본을 본받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졌다. 2차 대전에서 패배하고 원자폭탄 피폭 이후 일본이 지금처럼 발전하기까지 그들은 나름의 질서를 갖고, 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 점은 존경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요즈음의 일본을 보면 그뿐이다. 그저 경제력을 키웠을 뿐이다. 돈이 많다고 존경받지는 않는다. 그 재력으로 남을 괴롭힌다면 그 잘못은 자신에게 돌아갈 것이다. 시치미 뗀다고 한국인을 강제징용하고 꽃다운 소녀들을 위안부로 끌고 가서 참혹한 삶을 살게 한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불명예라고 생각되어 시치미 떼는 것을 더 쉽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양심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쉽고 가깝다. 순간의 이익만을 생각하면 양심을 멀리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진실을 덮기 위해 상대에게 돌을 던질 수도 있다.

일본에게 글자를 전하고 종교와 문화를 전해 온 우리에게 잠재적인 열등감으로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대한민국을 경제적으로 굴복시키려 했다면 오산이다. 진실을 바로 보아야 한다. 아베와 일본의 정치인들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과 대한민국이 얽힌 역사적 관계를 풀지 않고 가장 먼 나라로 머물 것인지, 협력하며 발전적인 현대사를 쓸 것인지.

나는 믿고 싶다. 아사히신문에 위안부 문제를 먼저 보도한 일본인의 양심을,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제대로 배상하라며 반(反)아베 시위를 하는 일본인들이 현명한 선택을 하리라고. 하루속히 가까이 있는 양심의 봉을 붙잡고 진정한 인류의 평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조현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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