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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미로(迷路)에는 문이 없다
기사입력 2019-08-23 07:00:14.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우리는 생각의 가벼움과 얕음을 쉽게 비난한다. 대신 심사숙고와 심모원려, 즉 오래오래 생각하고 이모저모로 따져가며 결정하는 것을 미덕으로 칭송한다. 돌다리도 두들겨 가며 건너면 물에 빠질 염려는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하세월로 시간을 낭비하다가 낙원으로 가는 기차를 놓치면 어쩌나?

  비가 오는 것을 예상하여 지붕을 손질하고 축대를 살펴보며 대비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다. 그렇다고 하늘이 무너지지는 않을까, 땅이 꺼지면 어떡하나,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 하며 마냥 불안에 떨고 있다면, 그것 또한 큰 일이다. 사막에서 죽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목이 말라서 또는 지쳐서 죽는 것이 아니라 심한 불안감과 초조함 때문에 그리 되었다는 안타까운 보고도 있다.

  마술적 사실주의로 유명한, 라틴 문학의 대표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아스테리온의 집>이라는 인상적인 소설을 썼다. 그는 ‘미로와 미노타우로스’에 관한 그리스 신화를 환상적인 이야기로 재탄생시켰다.

  미노타우로스로 상징되는 아스테리온은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아니다. 그저 복잡한 구조의 집에 사는 외롭고 심심한, 좀 못생긴 독거노인 같은 인물일 뿐이다. 주민들이 희생의 제물로 사람들을 그의 미궁으로 들여 보내면, 들어 간 사람들은 사람이 반가워 뛰어오는 아스테리온의 기척에 지레 놀라서 번번이 기절해 죽어버린다. 그들은 아스테리온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돌아서 나오면 그만이었다. 미로에는 문도 없었고 자물쇠도 없었다. 아스테리온은 실망을 거듭하다가 살아갈 의욕을 상실하고 만다. 그때 테세우스가 괴물을 처치하기 위해 들어온다. 이미 살 의욕을 잃은 아스테리온은 아무 저항 없이 테세우스의 칼을 받는다. 사실 테세우스는 그저먹기로 영웅이 된 셈이다.

  그러니 무슨 일을 만나던 겁(怯) 먹지 말고 일단 부딪쳐 볼 일이다. 상대는 대단치 않은 놈일 수도 있고, 얄팍한 계산을 숨긴 채 겉으로만 허세를 부리는 허풍선이일 수도 있다. 내가 고수인지 하수인지 떠보기 위한 어설픈 수작인지도 모른다. 그런 하찮은 이에게 승리의 영광을 안길 이유가 없다.

  예상 외로 센 놈이면 약한 부위를 낚아채 엎어치기를 시도하는 등 한번 모질게 붙어 볼 일이다. 센 놈이 제일 무서워 하는 자가 어정잡이 센 놈보다 지독하게 물고 늘어지는 모진 놈이다.

  어린 시절 걸핏하면 주먹으로 괴롭히던 이웃 형이 있었다. 그날도 그는 나를 툭툭 건드리며 울화를 돋구었다. 나는 이번만은 그냥 넘겨선 안 되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나는 한 번 맞으면 한 번 때리고, 두 번 맞으면 똑 같이 두 번 때렸다. 가당찮다고 여긴 그는 아예 나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는 세 번 맞고 한 번 때리고, 다섯 번 맞고 겨우 한 번 때릴까 말까 했다. 코피가 나기 시작했고 얼굴은 벌겋게 부어 올랐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는 놓아주지 않았다. 어이가 없다는 듯, 그는 나를 뿌리치고 자기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흘러 내리는 피를 훔치며 그의 집까지 따라갔다. 그리고는 욕을 섞어 가며 빨리 나와 다시 붙어 보자고, 고래고래 악을 써댔다. 그의 어머니가 나와서 달래주고 그가 잘못했다고 사과를 할 때까지 나의 악다구니가 계속된 것은 물론이다. 그날 이후 그 형은 물론 다른 친구들도 나를 대하는 태도가 참으로 많이 달라졌다.

  이 방법이 너무 무모하다 싶으면 좀 더 쉬운 방법이 있다. 한 번 세게 부딪쳐 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냥 돌아나오면 된다. 테세우스가 괴물을 죽이고 난 후 살아나온 방법이다. 테세우스는 그의 연인 아리아드네가 미로로 들어 갈 때 준 실타래에 의지해 안전하게 다시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미로에서 살아 나올 수 있는 방법은 풀어 냈던 실을 잡고 되돌아 나오는 길밖에 없는 줄 알았다. 지혜로운 방법인 듯하나 답답한 방법이다. 미처 탐색하지 못한 나머지 미로의 내밀한 사정을 살펴볼 겨를이 없다. 이 방법은 어떤가? 그것은 실이 한번 거쳐 지나온 길은 버리고 새로운 길을 택해 나아가는 것이다. 미로의 길은 길로 연이어 있으며, 어디에도 닫혀 있는 문은 없기에, 과감하게 지나 온 길과는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것이다. 실이 걸려 있지 않은 길로 계속 전진하기만 하면 조만간 멋진 신세계를 만날 수 있으리라. 발전은 익숙한 길에 있지 않고 낯선 길 위에 있다.

  갔던 길을 되밟아 나오는 방법은 쉽기는 하나, 발전의 여지가 없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끝까지 모질게 맞서 보는 방법은 자존심은 살릴 수 있으나 크게 상처 입을 각오를 해야 한다. 한 번 되받아 친 후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방법이 무난해 보인다. 기회란 가끔씩은 원하지 않은 순간에 찾아오기도 하는 것이기에….  용감한 자는 고난과 함께하지만 멋진 삶도 그의 것이다. 하지만 비겁한 자에겐 삶다운 삶이 없다.

 

권재욱(건원건축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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