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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여름을 보내며
기사입력 2019-08-23 07:00:15.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군포에서 330번 버스에 올라 목적지인 제부도 입구를 향해 간다. 차가 도심에서 조금 벗어나면 정겨운 풍경들이 차창으로 밀려온다. 나는 들녘의 모습이 궁금할 때면 이 버스를 탄다. 아직 벼 포기들은 이삭이 패기 시작했지만 푸른빛을 지키고 있다. 하나 밭작물들의 모습은 다양하다. 무성하게 자란 고추밭은 붉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가는 여름을 맘껏 즐기고 있으며, 이제 계절과 하직 인사를 하려는 토마토 줄기들은 누런 잎을 매단 채 밭 귀퉁이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파릇한 어린잎을 펼치며 따가운 햇볕을 즐기는 것들도 있다. 김장용 배추와 무들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고르게 심은 것으로 보아 모종을 한 것 같다. 재배기술이 발달하니 농부의 일손이 한결 수월하지 싶다.

1960년대의 농촌은 김장 배추와 무는 직접 씨앗을 밭에 뿌렸었다. 소에 쟁기를 메어 두둑을 만들면 쇠스랑으로 곱게 흙을 골라 놓고 두둑의 한가운데를 일자로 적당한 깊이로 골을 낸다. 경험이 많은 사람이 조심스레 정성을 들여 무와 배추씨를 뿌렸다. 그리고 흙을 덮는데도 기술이 필요했다. 싹이 골고루 잘 트면 문제가 없지만 이가 빠진 듯이 나오거나 몰려서 뭉쳐 나오면 일일이 뽑아 옮겨 심어야 했다. 비라도 맞으면 다행히 살지만 가물 때는 어려웠다. 그것들이 삐뚤빼뚤 덧니처럼 볼품은 없어도 뿌리만 내리면 잘 자랐다. 일정한 간격으로 솎음질을 해주어야 하고 그럴 때마다 어린 열무김치나 배추 겉절이가 가을 내내 두레상에 올라오곤 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들녘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다. 비닐하우스가 많이 늘어났고 대체로 작물들이 질서 있게 서 있다. 밭둑이나 마당가에서 바람을 타며 스럭스럭 소리 내던 추억 속의 수숫대들은 보이질 않는다. 가는 여름의 변화를 놓치지 않으려고 시선에 힘을 준다. 가끔씩 도로변에 무화과, 복숭아, 개구리참외를 파는 가게가 스친다. 포도 산지인 서신을 지난다. ‘가을날’이란 시에 들어있는 ‘릴케’의 간구처럼 포도송이마다 최고의 단맛을 숙성시키느라 정갈한 나무들이 혼신을 다하고 있다.

흙속에 뿌리내린 식물들은 모두 기다리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들녘의 곡식과 채소, 포도송이만 그러하지는 않다. 사람도 분명, 더 긴 기다림 속에서 천천히 그렇게 익어간다.

 

이순금(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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