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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솔티 텃밭에서 생긴 일
기사입력 2019-08-27 07:00:13.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연로하신 데다 목을 다쳐 전동 휠체어에 의지하고 사시는 분이 계시다. 더 이상의 어떤 노동도 불가능하지만 집 앞에 있는 텃밭 농사를 눈으로라도 참견하고 싶어서 종일 왔다 갔다 하시는 분이다. 평생을 농업에 종사하신 어른이라 온갖 잡초가 자라는 것을 보기도 힘들고 가뭄에 물 한번 주지 못하는 것이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 뭘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터졌다. 그날 역시 자식들이 외출하고 없는 시간에 전동 휠체어에 몸을 싣고 텃밭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문제가 생겼다. 밭 이랑 사이에 전동 휠체어 바퀴가 빠지면서 옆으로 넘어져 버린 것이다. 당장 휴대폰으로 119에 신고해야 했지만 스스로는 너무 소소한 일이라 수선을 떨기 창피스러웠다. 그렇다면 읍내에 나간 아들이나 며느리라도 불러들여야 했지만 그러지도 못했다. 젊은 날 체육대회에 나가면 모래주머니 오래 들기로 상을 받곤 했던 힘센 아버지였건만, 이런 일로 오가라기에는 아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차마 자존심이 허락하지도 않았다.

이리저리 용을 써보다 결국 포기하고 밭이랑을 베개 삼아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아들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햇볕의 강도는 점점 뜨거워지고 두 시간가량 고통스러운 시간이 흘렀다. 무쇠 같던 아버지의 의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결국 아들에게 전화를 하고 말았다.

“내가 사고를 쳤는데 잠깐 집으로 와줘야겠다.”

“무슨 일이신데요 아버지?”

“전동 휠체어가 살짝 넘어졌어. 바쁘면 천천히 와도 된다.”

목소리가 많이 힘들어 보이시는데 대수롭지 않다고 말하시는 아버지. 아들로서는 너무 놀라운 소식인데 천천히 와도 된다는 아버지가 아들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들에게 미안한 아버지와 아버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 아들….

삶에서 세월이란 찬장 속의 꿀단지 같은 것이다. 젊은 날에는 맛나서 아낌없이 퍼먹다 보면 결국 빈 단지만 남게 되는 것. 빈 단지임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더 이상 꿀을 모을 힘이 남아있지 않게 되는 것. 자식이 채워주는 꿀을 먹기에는 그냥 미안해 단념하고 빈 꿀단지를 바라보기만 하기로 하는 것. 그리고 더 이상 꿀을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쓰면서 남은 생을 사는 것. 내 인생의 꿀단지에는 과연 지금 얼마나 꿀이 남아 있을까.  

 

백두현(수필가)

 

〈건설을 보는 눈 경제를 읽는 힘 건설경제-무단전재 및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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