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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로만틱 로드에서 느낀 위험관리
기사입력 2019-08-29 07:00:09.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어~, 저차 뭐지?” 나름 주행로에서 130㎞로 과속하고 있는데, 추월로에선 차량들이 쏜살같이 내달렸다. 180㎞는 족히 넘어 보였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해서 렌트카를 찾아 1박한 후, 로만틱 로드가 시작되는 뷔르츠부르크로 가는 길이다. 말로만 듣던 제한속도 없는 아우토반에 들어선 것이다. 5분쯤 주행로를 달리다가 앞차가 120㎞ 정도로 서행하기에, 추월해 볼 요량으로 깜빡이를 켜고 속도를 높여 추월로에 들어섰다. 그런데 어느 샌가 꽁무니에 검은 차가 바짝 붙더니 비키라며 야단이다. 얼른 주행로로 비켜주니 바짝 붙었던 차는 화살처럼 내질렀다. 사실 난 140㎞도 떨렸다. 국내라면 객기 한번 부려 볼 만했으나, 여긴 독일 아닌가. 그리고 아직 시차 적응도 덜 되었다.

독일의 첫 인상은 섬뜩했다. 이번 여행은 프랑크푸르트에서 로만틱 로드, 잘츠부르크, 빈, 프라하, 베를린까지 11박13일 동안 말굽형태로 도는 여정이다. 그런데 여행기간 내내 아우토반에서 150㎞ 이상 밟아보지 못했다. 폭스바겐 T-ROC는 흔들렸고, 아내가 만류하는 통에 포기했다.

뷔르츠부르크 궁전과 알테마인교를 구경하는 내내 푹푹 쪘다. 38도를 넘었다. 숙소가 예약된 로덴부르크로 서둘러 향했다. 로덴부르크는 중세의 성벽이 원형 그대로 보존된 고성이다. 성벽을 따라 잠시 걷다가 성의 중심부로 걸어갔다. 성 중앙은 중세 도시가 그렇듯 시청, 성당, 광장이 위치한다. 시청사 종루에 올라가면 경치가 좋다는데, 아내가 고개를 저었다. 너무 더웠다.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숙소에 도착하자 호스트가 대뜸 조용히 살살 다녀 달라고 부탁했다. 어이가 없었다. 그나마 시외곽이라 밤엔 선선했다.

아침에 일어나 혈압약을 찾아보니 보이지 않았다. 여행가방을 모두 엎어놓고 샅샅이 뒤졌으나 없었다. 갑자기 뒷목이 뻣뻣해졌다. “아직 11일을 더 지내야 하는데 혈압약이 없어도 되나?” 아내가 더 긴장했다. 어제 묶었던 숙소에 전화했지만 없다고 했다. “어떻게 하지? 여행을 중단하고 귀국해야 하나? 이참에 혈압약을 아예 끊어버려?” 말도 안 되는 중얼거림에 아내가 버럭 화를 냈다. 아내는 서둘러 아들에게 혈압약 봉투를 사진 찍어 보내라고 카톡을 보냈다. 아들은 회사라며 귀가하면 보내 주겠다고 했다. 일단 다음 행선지인 뇌르틀링겐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뇌르틀링겐은 분화구에 형성된 고성으로, 로덴부르크처럼 성벽이 온전히 보전된 곳이다. 거리는 청결했고 주민들은 친절했다. 전형적인 독일 시골마을이었다. 혈압약은 잊어버리고 이곳저곳 둘러보며 노천 카페에서 소시지빵과 커피로 아침식사를 했다. 성벽 위에 올라 아름다운 고성을 감상한 다음, 예정대로 아우크스부르크로 향했다.

아우크스부르크는 20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대도시다. 그런데 중심가는 지저분했고, 회교도들이 많았다. 시청사 황금의 방과 아우크스부르크 돔을 구경하던 중, 아들이 혈압약 봉투사진을 보내왔다. 구글지도로 주변 약국을 검색하고 가장 가까운 약국을 찾아갔다. 혈압약을 잃어버렸다며 약봉투에 적힌 혈압약을 구매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약사는 혈압약을 잃어버렸다는 말에 신속하게 반응하며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다고 했다. 의사의 처방을 받을 수 있는 곳을 물어보았다. 옆 건물 3층 의원에 가보라며 친절하게 약국 밖까지 나와 가리켜 주었다. 3층으로 올라갔다. 출입문은 단단히 잠겨 있었다. 초인종을 몇 차례 눌렀더니 사복 차림의 여자가 문을 열어주었다. 혈압약 처방을 받으려고 한다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혈압을 재보더니 약봉투에 적힌 대로 처방전을 발급해 주었다. 단돈 10유로였다. 약국에 처방전을 가져다 주니 2시간 후 다시 오라고 했다. 아우크스부르크 시내를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오후 4시경 약국을 다시 찾았다. 약사는 혈압약을 다른 곳에서 가져왔다며 건네주었다. 한달치 약값은 49유로였다.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낯선 타국에서, 한국에서 복용하던 혈압약을 구매하다니? 혈압약을 받아 들고도 믿기지 않았다. 독일은 역시 의료 선진국이었다. 약을 복용하자 혈압은 금세 안정되었다.

위험관리 관점에서 보면 혈압약 잃어버릴 위험 요인은 아예 무시했고, 대비도 하지 않았다. 위험 요인은 늘 익숙한 곳에 웅크리고 있다가, 간과하는 순간 위기로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번이 그런 경우다. 다만 위기상황을 벗어나는 것도 위험 대응측면에서 매우 중요한데, 우여곡절 끝에 혈압약을 구입했으니, 전체 위험관리 프로세스에서 보면 약간의 추가 비용이 들어간 게 전부다. 운이 좋았던 게다.

다음 날 로만틱 로드의 종착지인 퓌센으로 향하면서, 아내가 대뜸 “당신 참 웃겨. 이렇게 낯선 곳에서 차를 렌트해 몰고 다닐 생각을 하다니” 신기해했다. “별거 아냐. 87년에 똥차 몰고 LA에서 앤아버까지 혼자 5500㎞ 횡단여행 했는데 뭐. 그때 비하면 럭셔리한 거지.” 피식댔다.

아우토반 추월로에는 자동차들이 경주하듯 내빼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가속 페달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내가 말린다. 그래 속도를 줄이자. 위험관리에 들어간 것이다.

 

김선규(강원대 건축토목환경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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