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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무심도 병이다
기사입력 2019-08-29 07:00:12.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아들한테 전화가 왔었다는 것을 하룻밤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전화 올 곳이 많이 없어서 전화기를 잘 들여다보지 않아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한다. 받지도 않는 전화기는 왜 갖고 다니느냐는 핀잔도 듣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다.

출근하지 않은 휴일 늦잠 자는 아들을 깨울 것 같아 열시쯤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 전화가 왔었다는 걸 알면 바로 할텐데 감감소식이다. 한참을 기다려도 전화가 오지 않는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지금 받을 수 없다는 메시지만 들린다. 불길한 생각이 스친다. 아들한테 달려가야 할 것만 같다. 그러나 갈 수가 없다. 아들이 사는 도시는 알고 있지만 집도 주소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콱 막힌다.

어느 장관 후보는 딸의 스펙을 위해 보통 사람들은 할 수 없는 별의 별 방법을 다 동원했다는 보도를 보고 자괴감이 든다. 힘없는 부모가 아무것도 해준 것 없이 정글 같은 사회에 내동댕이친 것 같아 미안하다. 집을 떠나 대학을 다닌 아들은 낯선 도시에서 하숙집을 구할 때도 본인이 알아서 구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난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서 집을 구했다. 입학 며칠 전 남편과 나는 아들이 구한 하숙집에 짐만 실어다 주고 돌아왔다. 아들이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할 때 방을 구하러 가자고 했다가 이제는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핀잔만 들었다.

군대 가기 전에 있었던 하숙집 아주머니가 형제관계를 물어봐서 외아들이라고 했더니 깜짝 놀라면서, 자기가 하숙을 한 이래 신입생 부모가 짐만 실어다 주고 돌아간 부모는 우리밖에 없었는데 진짜 외아들이 맞느냐고 반문을 하더란다.

외동으로 자란 사람은 어딘지 모르게 하는 행동들이 표시가 난다는데 아들은 한 번도 그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군생활 할 때도 선임들과 잘 지냈고 오히려 선임들이 외동 표시가 나지 않는 비결을 물었다고 했다. 나는 아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외동이라서 버릇없이 컸다는 소릴 듣게 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응석 같은 것은 받아주지 않았고 원하는 것도 다 해주지 않았다. 혼자 커서 사회생활이 부족할까봐 아는 친구들 하나 없는 캠프 같은 곳을 보내 사회생활을 익히고 생존력을 키우는 데만 신경을 썼지 아이의 스펙을 위해 무엇을 해줄 생각 같은 것은 하지도 못했다. 설령 생각했다 해도 해줄 능력도 없었다.

종일 아들과 연락이 되지 않아 애가 탔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다. 오만가지 생각을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저녁때가 돼서야 아들과 통화가 되었다. 하루종일 애가 탔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평소와 다름 없이 잘 있다는 안부만 확인했다.

 

권혜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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