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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현칼럼} 입법만능주의를 경계한다
기사입력 2019-08-30 06:30:09.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20대 국회가 종착역을 앞두고 있다. 내년 5월 말까지가 임기이나 다음주 시작되는 정기국회를 마치면 사실상 입법활동이 마무리된다. 정기국회 이후에는 곧바로 총선 정국에 돌입하고 선거 전투를 끝내면 짐싸는 의원들 때문에 국회의 원만한 가동이 어렵다. 갈길 바쁜 20대 국회는 정기국회 정상 가동 여부마저 불투명하다. 청문회와 선거법 정국으로 인해 시계제로 상태다. 사실 20대 국회만큼 논란이 많았던 국회도 찾아보기 어렵다. 보수와 진보의 의석비율이 역전되고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을 완성시켰다. 새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여야의 첨예한 대립으로 ‘식물국회’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20대 국회가 보여준 입법만능주의 행태는 경제 현장은 물론 사회전반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20대 국회에 발의된 의원입법안은 현재까지 총 1만9400건을 넘고 있다. 15대 국회(1996∼2000) 806건에 비해 24배로 늘어났다. 물론 단순 자구수정 등 법률 제ㆍ개정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의 발의안들도 다수다. 20대에 정부 법안은  807건으로 의원발의안 대비 4.1%에 그쳤지만 15대에는 의원 발의와 같은 807건이었다. 15대 국회 이전까지만해도 법률 개정안은 정부가 주로 발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회로 법안이 몰린 것은 1980년대 말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비대해진 행정부에 대한 견제 필요성이 대두되면서부터다. 1988년 국회 국정감사가 부활돼 정부 정책이 검증받기 시작했고 의원들의 입법도 활발해졌다. 국민의 대의기관이라는 명분과 과거 ‘행정만능주의’에 대한 사회적 비판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국회의 권능이 강화됐다.

 국회의 고유 권한인 입법활동에 토를 달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입법만능주의와 과잉입법의 폐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은 문제다. 현장을 잘 모르고 법안을 발의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특정업계를 비토하는 듯한 법안까지 나오고 있다. 여당의 한 의원은 고의나 과실로 부실시공이 적발되면 5년간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법안을 내는 등 ‘反건설’ 법안을 주로 발의했다. 도시정비사업 수주 과정에서 비위 행위가 적발된 건설사는 입찰 참가를 제한하고, 3회 이상 적발되면 시장에서 영구 배제하는 법안도 발의했다. 그는 지난 봄엔 미세먼지로부터 건설근로자들의 건강을 보호해야 한다며 공사현장에다 공기정화기까지 설치하라는 법안을 발의, 건설공사의 특성을 외면하기도 했다.

 야권의 한 당대표 의원은 1000억원 미만 공공사업에 재벌건설사의 참여를 제한하는 법안과 후분양 확대 법안을 발의해 대표적 ‘反건설 의원’에 이름을 올렸다. 이 의원이 20대 국회에서 발의한 주택법이나 건산법, 도정법 개정안들은 건설사와 사업시행자 등의 행위를 제한하거나 부담을 늘리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법안 수위가 너무 높아 건설업을 혐오하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나온다. 물론 발의된 법안이 모두 처리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너무나도 쉽게 법을 만들고 고치는 경향이 있음은 분명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금 경제계는 기업관련 ‘과잉입법’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7월 중순에 각각 시행에 들어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과 ‘블라인드 채용법’ 때문이다. 입법 단계에서부터 법규의 모호성과 입법만능주의, 과도한 기업 규제, 나아가 사적 자치 등 기본권 침해 등의 우려가 제기됐지만 일부 자극적 사건에 따른 비등한 여론에 떠밀려 졸속 입법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노조 등이 악용할 경우 기업 활동을 심각하게 제약할 가능성도 크다. 특히 부작용에 대한 기업들의 하소연이 이어지고 있으나 후속 보완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경영활동에 발목을 잡고 있다. ‘주52시간 근로제’가 대표적인 예다. 올초 경사노위에서 합의를 했지만 국회가 처리를 미루고 있다.

 정부가 어느 정도 시장에 개입하는 게 좋은지는 가늠하기가 매우 어렵고도 복잡하다. 우리나라는 자유시장 경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이 실패했을 때 제한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시장의 실패도 주의해야 하지만 정부가 실패하면 혼란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몇몇 과잉입법을 보면서 정부가 너무 앞서 나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언론을 통해 사회문제가 제기되면 국회와 정부는 서로 내가 해결하겠다고 나선다. 관련 법령을 만들고, 이를 어기면 처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가히 입법만능시대다. 정부와 의원 할 것 없이 과잉입법을 남발하는 것은 ‘실적쌓기’와 ‘보여주기식’ 외에는 달리 설명이 안 된다.

 새로운 기업규제 입법이 시행될 때마다 기업 입장에서는 관리 리스크가 늘어난다. 다른 나라에서는 규제를 풀어 기업의 의욕을 북돋고 투자를 유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기업을 옴짝달싹 못하게 옥죄고 해외로 쫓아내고 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이 있다. 눈앞에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급급해 정부가 시장과의 관계에 있어 ‘과잉금지 원칙’이라는 헌법적 가치까지 훼손해서는 안 된다. 시장이 우선이고 정부는 제한적ㆍ보충적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고 했다.

 

서태원(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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