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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많이 훌륭히는 못 해
기사입력 2019-09-03 07:00:09.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복지관에 계신 어머니에게 도착하자마자 내가 하는 것은 어머니에게서 나를 찾는 일이었다.

“엄마, 나 누구야?”

“몰라.”

“힌트 줄게. 엄마 막내딸.”

“연수이.”

“와! 맞았다.”

이런 날은 대성공이다. 족집게 과외를 거쳐서 알아맞히는 날도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어느 날은 정답을 줘도 답을 못 맞힌다. 그런 날은 답답하다. 포기하고 이웃집 아줌마가 되어 같이 놀 수밖에 없다.

“엄마, 덥다 옷 좀 벗자.”

“놨두소. 댁이 누군데 내 옷을 벗기요.”

아무리 엄마라고 불러도 알아보지 못한다. 이럴 땐 무슨 수로 어머니의 기억을 찾아낼 수 있을까.

“엄마, 연수이 기억 안나? 엄마 막내딸.”

어쩌다 어머니의 기억 속으로 막내딸이 스며들면 어머니도 멋쩍은지 다른 소리를 하신다.

“내가 기억하지. 그런데 마이 훌륭히는 못 해.”

농담 같은 소리로 에둘러서 말을 꺼내는 어머니의 말솜씨가 예전 같아지면 그래도 정신이 돌아온 시간이다.

어머니가 기억을 훌륭히 하던 시절이 있었다. 머리가 비상해서 아버지 장부에 적힌 내용을 어머니는 통째로 다 외웠다. 아버지가 메모장을 열기도 전에 어머니의 입에서 내용이 줄줄 흘러나오고, 아버지는 그것을 확인만 하면 되었다.

“작년 오늘 시장에 밤을 얼마씩에 팔았더라.”

“대(大)자는 3,500원, 중(中)자는 1,800원, 소(小)자는 700원에 팔았구만은.”

“어디 보자…. 아, 맞네.”

밤농사를 짓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9월 첫 주 대화는 늘 이랬다.

텔레비전에서 재밌는 드라마를 하면 이튿날 동네 사람들에게 생생히 전달하는 것도 어머니였다. 마치 배우들이 대사를 하는 것처럼 대화체로 했다. 원작보다도 더 재미를 붙여서 말하는 때도 있었다. 아마도 어머니가 글을 썼다면 훌륭한 극작가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어머니는 문맹인 것을. 그러기에 어머니의 기억이 더 비상했는지도 모른다.

9월의 첫 장날은 아버지가 한 톨 한 톨 모아둔 올밤을 팔러 가던 날이다. 이맘때면 훌륭히 기억하는 허리 굽은 어머니가 나를 부르신다.

 

정하정(수필가)



〈건설을 보는 눈 경제를 읽는 힘 건설경제-무단전재 및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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