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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추석과 올벼쌀
기사입력 2019-09-06 07:00:15.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조금씩 살이 오르기 시작한 달이 아파트 꼭대기 위에 두둥실 떠올랐다. 운치 없는 도시의 밤이지만 머지않아 추석이라는 걸 달이 알려준다. 지금쯤 고향 지붕 위에도 달이 뛰어놀고 있을 터, 그 멋스러운 풍경이 달빛에 아른거린다.

이맘때쯤이면 들판의 벼도 주인의 발걸음 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쫑긋하고 있을 거다. 아니, 시대가 변했으니 벼에는 이제 발걸음 소리보다 콤바인 소리가 더 친숙할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벼를 낫으로 베던 시절도 사라진 풍경 중의 하나가 되었다. 덩달아 추석 전에 올벼쌀(찐쌀)을 마련하던 고향의 풍속(風俗)도 사라졌다.

내가 어렸을 때 올벼쌀은 추석이면 꼭 마련해야 하던 추석 음식 중 하나였다. 올벼 쌀은 덜 익은 벼를 훑어 벼 낱알을 솥에 찐 다음 말려서 껍질을 벗겨 낸 쌀을 말한다. 아버지는 추석이 돌아오기 전 완전히 익지 않아 푸른 빛이 도는 벼를 서너 다발 베어 지게에 지고 돌아오셨다.

그리곤 벼를 턴 다음 낱알을 가마솥에 부었다. 양이 많은 벼를 한꺼번에 찌려면 가마솥이 제격이었다. 화력 좋은 장작불에서 벼가 잘 익으면 마당에 멍석을 깔고 펴서 말렸다. 맑은 가을볕에 이틀쯤 널어 두면 벼가 알맞게 말랐다. 그걸 절구통에 조금씩 넣어 찧었는데 예전에는 올벼쌀을 모두 그렇게 만들었다. 절구에서 쌀이 다 찧어지면 키를 이용해서 까불러 껍질을 분리했다.

올벼쌀을 만드는 방법은 그렇게 힘과 요령, 정성이 많이 필요했다. 그런데도 올벼쌀을 마련하는 이유는 차례상에 올릴 메밥의 재료로 쓰였기 때문이다. 올벼 쌀로 지은 메밥의 맛은 오묘했다. 약간 노르스름한 빛깔에 고소하고 달짝지근했다.

올벼쌀은 메밥을 짓는데 주 용도로 쓰였지만 훌륭한 간식이기도 했다. 올벼쌀을 한 주먹 입에 넣고 오물거리다 보면 깊은 맛이 우러났다. 그건 바로 자연의 맛이었다. 그렇게 추석을 전후로 시골 아이들의 호주머니는 볼록했다. 모두 호주머니 속에 올벼쌀을 넣고 다녔기 때문이다. 추석에 장만한 음식들이 다 떨어지고 난 뒤에도 올벼 쌀은 남아 있어 우리 입을 즐겁게 해주었다.

올벼쌀을 못 먹어본 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나는 그 맛을 생생히 기억한다. 절구로 콩콩 찧어 모양은 예쁘지 않아도 감칠맛이 돌던 그 쌀을 한주먹 입에 넣고 싶다. 추석을 추석답게 했던 올벼 쌀, 내게는 그리움을 몰고 오는 추석의 중요한 삽화다.

 

장미숙(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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