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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기획] 정부청사 50년 발자취 - 정부서울청사
기사입력 2019-09-09 05:00:20.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대한민국 첫 정부종합청사... 조선시대 육조거리 당시 국내 최대 규모
   
정부서울청사 전경

 

우리나라 최초의 정부청사는 일제강점기인 1926년 건립된 조선총독부 건물이었다. 해방 이후 이를 미군정 청사로 사용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뒤에는 중앙청이라 부르며 정부청사로 활용했다.

정부 조직이 늘어나면서 공간이 부족해지자 1961년 현 정부서울청사 건너편에 쌍둥이 건물을 신축해 미국 대외원조기관 유솜(USOM)과 대한민국 정부가 한 개씩 사용했다. 하지만 1966년 정부는 점점 확대되는 정부조직에 따른 청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종합청사(현 정부서울청사) 건립계획을 수립하고, 입지는 중앙청과 근접 편의성과 과거 조선시대 때 육조거리였다는 역사적 의미를 고려해 세종로 현 위치로 결정했다.

이후 총무처가 설계 공모를 실시한 결과, 25점의 응모작 중 나상진 건축설계사무소의 작품을 최종 당선작으로 선정해 1600만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신기술을 적용하고 공사비를 절감할 수 있는 경제적인 건물 설계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진행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1967년 7월 29일 착공해 골조 공사를 진행하던 중 총무처 장관이 기초암반공사 재검토를 지시한 것이다. 건설연구소에서 지질을 재조사한 결과, 당초 설계한 매트공법 기초 시공이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나상진 측에 외국 용역회사와 합동으로 설계할 것을 요구했으나, 나상진 측은 정부의 지질조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결국 정부는 미태평양용역회사(PAE)와 기초설계 변경 계약을 체결했다.

설계변경으로 공사가 지연됐지만 신공법 등을 적극 사용해 3년 5개월 만인 1970년 12월 23일 완공했다. 정부종합청사 건물은 대지 4719평, 연면적 2만1318평, 지하 3층, 지상 19층, 탑상 3층 규모로, 단일 건물로는 당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이후 정부청사 부족 문제를 해소하고 OECD 회원국으로서 위상에 걸맞은 외교통상 전문 청사를 마련하기 위해 정부종합청사 별관 건립을 추진해 1995년 설계 공모를 통해 ㈜종합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이승우ㆍ윤석우ㆍ장일훈)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범양건영이 2002년 말 준공한 별관은 국제회의장ㆍ기자 브리핑실ㆍ리셉션홀ㆍ외신처리실 등 외교통상 업무에 필요한 특수시설을 갖추고, 장애인을 위한 전용 엘리베이터를 현관에 설치했다. 또 정부종합청사와 별관을 오가기 편하게 50m의 구름다리를 설치했다. 외관은 중후한 기품이 나는 화강석으로 꾸몄고, 지붕은 국민을 섬기고 받드는 정부의 자세를 형상화했다. 별관까지 완공한 정부서울청사는 보수작업을 반복하며 국내 최초의 정부종합청사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채희찬기자 ch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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