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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두뇌의 밭
기사입력 2019-09-17 07:00:14.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쟁기질하는 소 뒤로 드문드문 왜가리가 쫓아다닌다. 보습에 의해 땅이 뒤적여질 때 그 속살을 제일 먼저 만나는 행위이다. 그러면서 지렁이나 굼벵이를 잡아 배를 채우고 딸린 식구를 부양한다. 급할 것도 없이 천천히 사색에 잠긴 것처럼, 어찌 보면 능청스럽게 이랑 사이의 흙덩이를 넘으며 농부의 걸음을 따른다.

변화하는 문명 속에서 흙을 뒤집는 것이 소에서 경운기로, 경운기에서 트랙터로 발전했을 뿐 왜가리의 그런 행각이 멈춘 것은 아니다. 작물을 키우는 대부분의 논밭을 피해 갯가나 습지에서 부지런히 주억거리다가 모처럼 횡재를 하는 것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자면 내가 다 흡족하고 여유로워진다. 자칫 탁한 것에 에워싸이거나 너무 가벼워져 촐랑대기 십상인 언행에 무언의 일침으로 다가오는 까닭이다.

그러다 보니 가끔 나도 왜가리의 두렁타기가 부러운 날이 있다. 땅을 뒤집는 쟁깃날이 그리울 때도 있다. 일상에 치어 정신운동이 무디거나 과히 쓸모없는 잡다한 상념들이 덤불을 이룰 때면 뇌의 묵정밭을 후닥닥 갈아엎고 싶어진다. 고이 잠자는 흙을 깨우듯이 새 바람을 머릿속에 불러들이기를 소망한다.

적잖이 권태의 강가를 서성일 때였다. 복잡하게 얽힌 연줄로부터 멀어져 깊은 골에 숨어들어 미처 풀지 못한 글의 세계에 도달하고자 했다. 인생길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도 냉철히 따져보는 시간이라 여겨졌다. 그럴수록 스스로에게 가하는 채찍의 소리는 우렁우렁했다. 정신 차리라고. 안일하게 머뭇거릴 새가 없다고. 무언가 새로운 일을 꾀하기 위해서는 잡념으로 무성한 머릿속의 풀밭을 과감히 갈아엎으라고. 그래야만 싱그러운 바람 한 켜가 다시 보금자리를 틀 것이라고.

그러나 실상 가정이란 굴레 안에서의 몸부림은 크게 달라질 것이 없었다. 식구들의 평안이 우선이고, 늘 서 있는 자리가 시작이며 끝이고 끝이며 시작이다. 하여 멀리 항해하진 못하더라도 제자리에서 닻을 올리고 다시 내리기를 반복하는 선원이 되기도 한다. 외려, 밤낮 없이 들끓는 허영의 결을 다독이고 난 뒤에야 보습 뒤의 보슬보슬한 흙을 만난다. 왜가리의 몸짓으로 주억주억, 허기 채워볼 먹이를 한 입 가득 물기도 한다.

이러한 노역이 수반되는 것이 글 쓰는 자의 숙명이며, 다른 한 편의 즐거운 비명이다. 그래서 두뇌의 밭은 절대로 묵정뙈기로 머물 수가 없는 것이다.

 

김선화(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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