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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시적 감수성이 필요하다
기사입력 2019-10-04 07:00:11.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사람은 쉬 가질 수 없는 것을 꿈꾼다. 살고 있는 오두막집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 같을 때 궁궐 같은 집을 꿈꾸고, 제대로 연애 한번 못해 본 사내가 절색과의 사랑을 꿈꾼다.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들은 대부분 현실에서는 못나고 주변머리 없는 이가 그린 것이며, 장엄한 영웅담은 용기 없고 소심한 이들의 작품인 경우가 많다.

사람이 날 수 없었을 때 새를 부러워하고 바람을 깊이 탐구했으며 하늘을 유난히 아름답게 묘사했다. 한때 달은 이태백이와 놀았고 그곳에서 토끼들이 떡방아를 찧었으며 아이들은 “달 달, 쟁반 같이 둥근 달…” 노래하며 동심의 샘물을 길어 올렸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이후 달은 꿈의 나라에서 현실이 되었고 우리는 탐구할지언정 더 이상 노래하지 않았다.

꿈꾼다는 것은 그것을 간절히 원한다는 것이다.

청운의 꿈은 출세에 대한 소망을 의미하고 남가일몽(南柯一夢)은 부귀영화에 대한 허망한 꿈을 상징한다. ‘꿈도 야무지다’란 말은 분수에 맞지 않는 욕심에 대한 가벼운 비웃음이며, 꿈나라는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사람을 만나는 환상의 곳이다. “꿈길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 그 임은 나를 찾아 길 떠나셨네 / 이 뒤엘랑 밤마다 어긋나는 꿈 / 같이 떠난 노중에서 만나를 지고… 황진이가 그리운 임 찾아 나서곤 하던 길이 꿈길이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간절히 보고파 애태우다 잠시 회포를 푸는 애틋한 곳이 꿈속이다.

시인이나 예술가가 위대한 것은 일찍이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상상하게 하고 꿈꾸게 하는 신묘한 화두를 우리에게 던져주기 때문이다. 범인(凡人)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서, 누군가가 행한 바 있는 경험 중에서 욕심을 내며, 여의치 않으면 꿈을 꾼다. 하지만 시인들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 누구도 경험해 보지 않은 것을 그리워하고 꿈꾸게 한다.

사람들이 비행을 꿈꾸기 시작한 것은 그리스 시인이 다이달로스라는 건축가로 하여금 그의 아들에게 밀랍과 깃털로 만든 날개를 붙여 하늘을 날게 하는 시를 읊은 뒤부터다. 이후 사람들은 하늘을 날기 위한 연구를 거듭하여 드디어 1904년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만들었다. 옛적부터 뭇 시인묵객들이 달과 관련한 아름다운 시화를 지어 바치자 인류는 꿈을 현실로 바꾸기 위한 탐구를 거듭하더니 종국에는 달에 직접 날아가 거닐기에 이른다.

아스피린의 탄생은 또 어떠한가? 기원전 587년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민족은 고향을 그리워하고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며 하프를 버드나무에 걸었다. 중생의 질병과 아픔을 치유하는 관음보살 그림이나 조각상은, 한 손에는 버드나무 가지를, 다른 손에는 감로수 병을 쥐고 있다.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정든님과 이별을 할 적에는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전하며 별리의 아픔을 위로하였으니, 이를 절양류(折楊柳)라고 했다.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임에게 / 주무시는 창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 나거든 / 나인가도 여기소서” 기생 홍랑이 연인 최경창을 떠나보내며, 지금은 함흥냉면집 상호로 유명한 함관령(咸關嶺) 고개에서 눈물로 건넨 것도 한 줄기 버드나무 가지였다.

왜 고통과 아픔의 순간에 하필이면 버드나무였을까? 늘 시심(詩心)과 동행했던 고대의 현인들과 시인에게 어떤 신비한 영감이 가닿았던가. 버드나무에 통증을 완화시키는 성분이 있다는 것을 처음 발견해 낸 사람은 히포크라테스였다. 그는 한 줄의 시편에서 힌트를 얻어 버드나무 진액을 진통제로 사용해 볼 궁리를 해냈다. 이후 오랜 세월이 흐른 1899년, 드디어 버드나무 추출액으로부터 아스피린을 만들어내기에 이른 것이다.

시인은 사람들을 아름다운 상상의 나래로 시대를 이끈다. 아니 시대를 정확하게 통찰하고 세상을 미리 내다보며 새벽빛 같은 꿈을 제시하는 이, 그가 바로 시인이다. 훌륭한 인간은 죄다 시인이다. 모든 시인이 죄다 훌륭하진 않을지 모르지만. 꿈이 없는 인간은 사막처럼 건조하다. 남에게 꿈을 줄 수 없는 사람은 살아가는 보람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 공동체와 이웃 앞에 꿈과 희망을 펼쳐보일 수 없는 자, 그는 인물이 아니다. 일찍이 위대한 인물치고 시인이 아닌 이 없었다. 그는 늘 빛나는 시적 감수성으로 먹구름 아래에서도 파아란 가을 하늘을 꿈꾸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그리움을 놓지 않는 한, 꿈은 이루어진다. 또한 가을이다.

 

권재욱(건원건축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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