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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주 52시간 문제, 유연근무제로 풀자
기사입력 2019-10-23 07:00:10.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일감이 몰리면 하루 24시간 공장을 돌려야 합니다. 주 52시간 근무로 납기 맞추려면 성수기엔 사람을 더 뽑아야 하는데, 인건비 생각하면 꿈 같은 얘기입니다.” “잔업이 줄면 직원들도 불만이 클 겁니다.” 요즘 일감이 많아 비교적 잘 나가는 중소기업인의 얘기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최대 가능한 근로시간을 종전의 주당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도록 강제하는 제도로 작년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문 대통령이 후보 당시 약속한 대로 국민들에게 ‘저녁 있는 삶’을 보장하고 줄어든 근로시간만큼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 이 제도의 취지였다. 그러나 근로시간 단축법이 시행되면서 목적은 오간데 없고 부작용만 속속 드러났다.

  내년부터 50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되면 중소기업들도 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연장근로의 축소로 월급이 줄어드는 근로자들의 입장도 고용주와 별반 다르지 않다. 월 급여가 줄어들 것에 대비해 근로자들이 올 연말 무더기로 퇴직금 중간 정산을 요구한다면 기업은 엉뚱한 추가 자금까지 마련해야 한다. 이미 산업 현장에서는 각자 살 길 찾기에 부심하고 있다. 그러나 회사 쪼개기나 동종기업 간의 직원 맞교환 근무처럼 편법이나 탈법 외에는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 새로운 제도를 그만큼 견고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달 초 중소기업중앙회는 300명 미만 사업장의 56%는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고용노동부 장관은 주 52시간제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해결 방안을 찾겠다고 토를 달았다. 혼란에 빠진 중소기업들은 시행의 연기뿐 아니라 아예 도입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정부가 검토하는 보완책은 계도기간 운영, 감소 임금분에 대한 보전 지원 등에 머물 것이다. 모두 한시적이고 재정이 수반되는 미봉책이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이미 만들어진 제도는  그냥 놔두고 당장 보완책부터 찾아야 한다. 그만큼 산업현장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산업현장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진작 통과되었어야 할 유연근무제 보완 입법은 조국 교수를 둘러싼 정치논쟁에 파묻혔다. 금년 초 노사정이 합의했던 탄력적 근로시간제 개선방안, 선택적 근로시간제와 유연근로제 개선을 위한 국회의 입법이 아직 논의조차 안 되고 있다. 현재의 유연근무제도로는 집중적인 기술개발, 계절적 수요로 인한 부품 납기 준수 등 산업계의 공통된 과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과거에는 주 68시간의 근로를 운영했기 때문에 유연근무제의 필요성이 크지 않았지만 52시간으로 대폭 줄어든 만큼 유연한 근로시간이 필요해졌다. 작년부터 시행 중인 300인 이상 사업장들의 절실한 요구다. 지금의 제도는 엄격한 도입 요건과 짧은 단위기간 때문에 적용하기 어렵고, 위반에는 엄격한 형사처벌이 뒤따른다. 제도의 보완 없이 근로시간이 단축된다면, 일감을 놓치고 싶지 않은 기업인들을 범법자로 만드는 엉뚱한 상황도 벌어진다.

  일본의 경우, 작년까지는 노사 합의로 연장근로를 제한 없이 허용해 왔으나 입법을 통해 금년부터 연장근로를 법으로 제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을 최대 3개월로 확대하고 연구개발 관련 업무를 연장근로에서 제외하는 등의 유연성을 두어 제도의 실효성을 높인 점이 우리와는 다르다. 산업현장보다 탁상공론의 프레임에서 정쟁에 매몰되어 있는 국회에서 개선안 입법이 당장에 가능하지 않다면, 우선 시행규칙이나 고시 등을 통해 변경할 수 있는 한시적 인가 연장근로나 재량 근로시간제 등이라도 개선하자. 기업들이 유연근무제를 활용할 수 있도록 숨통을 터줘야 한다. 한시적 연장근로와 관련하여 근로기준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허용 범위를 탄력적 근로시간제나 선택적 근로시간제로 대응이 어렵거나 사업상 불가피한 사정 등으로 확대하고, 고용부 고시를 통해 허용 대상에 기획형의 업무를 추가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산업구조와 기업의 대응 능력으로는 주 52시간제를 감당하기 어려워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선택적 근로시간제 확대 등 그동안 재계가 요구했던 사항들을 살펴야 한다. 국회의 논의가 자꾸 늦어진다면 정부가 행정적으로라도 반영해 보자는 얘기다. 기업들의 적응을 위해 대기업은 계도기간을 연장하고, 중소기업은 제도 자체의 시행 시기를 늦추는 방안도 검토하자. 그러나 탄력적 근로시간제,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비롯한 유연근무제의 개선을 위한 입법이 문제의 확실한 해법이다. 

 

허희영(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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