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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불화(不和)의 여신이 던진 사과
기사입력 2019-10-29 07:00:17.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중세 시대에 손가락 끝에서, 혹은 바늘 끝에서 몇 명의 천사들이 동시에 춤 출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논쟁으로 떠오른 적이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대작 <신학대전>에서 ‘여러 명의 천사가 같은 장소에 있을 수 있는가?’라는 영적인 문제 제기가 엉뚱하게 논쟁을 위한 논쟁으로 비화된 경우이다. 일 하지 않고 호의호식하며, 하릴없이 말하기로 소일했던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이었다.

  조선 현종 시절 아버지 효종이 죽자 효종의 어머니뻘인 자의대비가 상복을 얼마 동안 입을 것인가하는 문제로 치열한 논쟁이 붙었다. 예법대로 차남의 죽음이니 1년간 입으면 된다는 서인의 주장과 왕이었으니 3년을 입어야 한다는 남인의 주장이 맞섰다. 대학자이자 정치가인 송시열과 허목이 각각 서인과 남인의 대표로 나섰다. 몇 년 후에는 효종의 왕후가 세상을 떠자 이번에는 1년이냐, 9개월이냐를 두고  똑 같은 논쟁이 붙어 세월을 죽였다. 승패는 일 대 일로 끝났지만, 그 후유증은 끝없는 당파싸움으로 이어져 나라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이론만 아는 학자들과 민생을 외면한 채 집권에만 눈이 어두운 정치인들의 놀음이 빚어낸 우리 역사의 부끄러운 한 장면이다.

 우리도 자주 싸운다. 두 사람 이상 모인 곳에는 늘 불화가 동행한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다른 경험을 쌓으며 형성된 인격체끼리 어울려 지내면서 언제나 화기애애하기만을 바란다면 그것이 이상하다. 그나마 가끔씩은 사이좋게 지내기도 하는 것은 잘 받은 교육과 터득한 지혜가 양보와 배려와 사랑이 삶에 상당한 유익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덕분이다.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상대를 충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사랑할 수는 있으니, 이는 그것이 스스로의 행복과 생존에 꼭 필요하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알기 떄문이다. 이웃과 잘 지내는 것은 자신과 주위를 유쾌하고 활력 넘치게 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우리는 화합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불화한다. 천생연분 부부 간에도 싸울 때가 있고, 나의 간이라도 떼어 줄 수 있는 형제자매  간에도 다툼이 있으며, 한 솥밥 먹는 동료 간에도, 공동 운명체인 시민들 간에도 불화가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불화의 원인이 뜻밖에 너무나 뻔한 곳에 있음에 놀란다. 자신의 이익을 잃을 위험에 있거나 자존심이 상한 경우, 둘 중의 하나이다.

재산이나 권력을 빼앗길 위험이 첫 번째 불화 원인이다. 사람은 특별히 상승하지 못하는 것을 많이 불쾌해 하지는 않으나, 현재 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내놓아야 하거나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심히 못 견뎌한다.

  두 번째는 자존심이 상한 경우이다. 자존심은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며 스스로 만족하거나 평온한 마음으로 지내는 법이 없다. 나보다 못한 이를 만나면 자만심이 건방을 떤다. 나보다 잘난 이를 보면 열등감에 사로잡혀 우울해진다. 자만심으로 건방을 떨면 상대편이 나를 싫어하고, 나를 열등감에 젖게하는 이는 그를 볼 때마다 짜증이 난다. 평소 잘 지내다가도 뭔가 비교거리가 생기는 순간 화합은 깨지고 만다.

  바다의 요정 테티스의 결혼식에 불화의 여신 에리스는 초청받지 못했다. 자존심 상한 에리스는 흥겨운 파티장에 탐스런 사과 하나를 던져 넣는다. 사과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적혀 있었다. 헤라와 아테나와 아프로디테, 세 여신은 서로 자신이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라며 조금도 양보할 기색이 없다. 제우스로부터 판결을 넘겨받은 파리스에게 여신들의 뇌물 공세가 이어진다. 헤라는 세계를 지배하는 왕이 되게 해 주겠다 하고, 아테나는 모든 전쟁에서 승리자가 되게 해 주겠다고 하며,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주겠다는 약속으로 꾄다. 청년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손을 들어주고, 스파르타의 왕비 헤레네를 얻는다. 트로이 전쟁이 발발한 원인이다. 자존심이 극도로 상한 헤라와 아테나는 그리스 동맹 편이 되어 파리스와 트로이를 끝내 멸망시키고 만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 뻔해 보이는 논쟁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통 시끄럽다. 자신이 불과 몇 년 전 장담하던 논리로 오늘은 전혀 상반된 주장을 펴고 있으니, 상호 그렇게 목청을 높일 일은 아니지 싶다.  이게 모두 불화의 여신이 던진 사과 탓이다. 사과에는 무슨 글귀가 씌어져 있는 것인가?

 

권재욱(건원건축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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