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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 길을 묻다] 선과 악의 기로(岐路)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본성
기사입력 2019-11-04 07:00:12.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인간의 본성은 선(善)한가, 아니면 악(惡)한가? 삶에 정답이 없듯 이 또한 정답이 없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정답이 없다고 하여 해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각자 삶의 방식에 따른 견해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필자는 인간의 본성은 악(惡)하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그 이유를 갓난아기에게서 찾았다. 흔히 사람들은 아기를 보면 천사 같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꾸밈이 없기 때문이다. 순수하고 순박하고 맑고 깨끗하다. 하지만 다른 한쪽 면을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배가 고프면 젖 달라고 울고, 변을 보면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운다. 잠이 와도 울고, 잠에서 깨어나도 운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고 욕구를 채우려는 이기심만으로 가득 차고도 넘친다.

순자는 ‘성악(性惡)’편에서 “사람들의 본성은 나면서부터 이익을 좋아하는데, 이것을 따르기 때문에 쟁탈이 생기고 사양함이 없어진다”고 했다. 이 구절이 필자가 성악설에 무게를 두는 이유다.

맹자는 ‘공손추’편에서 “만약 지금 어떤 사람이 문득 한 어린아이가 우물 속으로 빠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면 누구나 깜작 놀라며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되는 것은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기 위해서가 아니고, 마을 사람과 친구들로부터 어린아이를 구했다는 칭찬을 듣기 위해서도 아니며, 어린아이의 울부짖는 소리가 싫어서 그렇게 한 것도 아니다. 이것을 통해서 볼 때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惻隱之心ㆍ측은지심, 仁ㆍ인), 부끄러워하는 마음(羞惡之心ㆍ수오지심, 義ㆍ의)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辭讓之心ㆍ사양지심, 禮ㆍ예)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是非之心ㆍ시비지심, 智ㆍ지)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어짊(仁), 의로움(義), 예절(禮), 지혜(智)는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지닌 것이 아니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본성은 선(善)하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공자는 <공자가어> ‘육본’에서 “선한 사람과 함께 거처하면 마치 지초(芝草)와 난초(蘭草)가 있는 방에 들어가 있는 것과 같아서 오래 지나면 그 향기는 맡을 수가 없지만 저절로 그 향기가 배어드는 것과 같으며, 선하지 못한 사람과 함께 거처하게 되면 마치 생선 가게에 들어가 있는 것과 같아서 오래 지나면 그 냄새를 맡을 수는 없지만 저절로 그 생선의 비린내가 배어드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말이다. 문득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가 떠오른다. 어쩌면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 이사한 이유는 공자의 영향을 받아서가 아닐까?

 

송영대(헹복경영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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