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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산책] 노대가의 열정을 되살린 대본작가 보이토
기사입력 2019-11-07 07:00:14.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이탈리아 오페라의 상징적 존재 주세페 베르디(1813~1901)는 50대 중반 이전에 모든 것을 이루었다.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가 되었고, 고향 인근에 광대한 농장을 일구었으며, 통일 이탈리아의 국회의원도 지냈다. <돈 카를로>(1867) 이후에는 더 이상 신작 욕구가 없어졌다. 고향 유지로 지내면서 기존 작품들을 개정하는 것으로 여생을 보낼 계획이었다. 이집트의 카이로 오페라극장이 개관기념으로 요청한 <아이다>(1871)도 거절 끝에 승낙한 케이스였다. 그 후에는 악보출판사 리코르디의 거듭된 신작 요청에도 10년이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때 접근한 사람이 아리고 보이토(1842~1918)였다. 한때 “이탈리아 음악의 제단이 늙은이들에 의해 사창가의 담벼락처럼 더러워졌다”며 베르디를 맹렬히 비난한 젊은 문필가 그룹의 리더였던 보이토는 이상을 실현하고자 스스로 오페라 작곡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임을 깨닫고는 대본작가로 기여하기로 마음을 바꾼다. 그리고 음악은 역시 베르디가 최고임을 인정하고 노대가를 찾아가 지난날의 과오에 머리를 조아린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출판사의 계략도 작용했다.

<시몬 보카네그라> 개정작업을 통해 작가로서 보이토의 실력을 확인한 베르디는 74세에 <오텔로>(1887)을, 80세에 <팔스타프>(1893)를 보이토의 대본에 작곡했다. 그 결과 이탈리아 오페라에 부족했던 극적 완성도가 엄청나게 끌어올려졌다. 보이토와 친해지자 그 형인 건축가 카밀라 보이토에게도 일을 맡겼다. 베르디가 개인재산으로 밀라노에 세운 ‘음악가의 휴식의 집’이라는 성악가를 위한 양로원은 카밀로의 작품이다. 이 모든 결과물들은 아리고 보이토가 용서를 구하고, 거장이 관용을 베푼 것에서 시작되었다.

(유형종 음악·무용칼럼니스트·무지크바움 대표)

〈건설을 보는 눈 경제를 읽는 힘 건설경제-무단전재 및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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