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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스페셜] 근로시간은 줄고 임금은 더 받고… 적정공사비도 확보
기사입력 2020-02-12 06:00:12.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경기 평택 LH 현장, 전자카드로 출퇴근 관리하고…주휴수당까지 지급

공사 낙찰률 90% 넘어…사업주ㆍ근로자 ‘윈윈’

 

   
건설근로자 전자카드제를 도입한 LH 평택 소사벌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근로자들이 전자카드 단말기에 퇴근기록을 하고 있다/ 안윤수기자 ays77@

 

최저 기온 영하 10도의 기습 한파가 엄습한 지난 5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경기도 평택 소사벌 아파트 건설현장. 한창 일할 시간인 오후 4시가 넘자 현장 근로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퇴근 준비를 시작했다. 작업복을 벗은 건설근로자들은 건설현장을 벗어나기 전에 현장 한 쪽에 마련된 조그마한 건물로 들어갔다. 근로자들은 익숙하게 각자 품속에서 신용카드 한 장씩을 꺼내 건물 안에 설치된 단말기에 갖다 댔다. 안면 인식기로 카드 주인과 동일인임이 확인되자 근로자들은 유유히 건설현장을 떠났다.

건물의 형태를 만드는 골조공사가 한창인 이곳은 겉보기에는 다른 주택 건설현장과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대부분 현장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실험이 진행 중이다. 이곳 현장에서는 건설근로자들의 출퇴근을 전산 방식으로 자동 관리한다, 동시에 건설근로자에게는 시중노임단가 이상의 적정임금을 보장하고 있다.

이날 이곳 현장에서 일한 134명의 건설근로자는 모두 전자카드로 직접 자신의 출퇴근 기록을 남겼다. 전자카드 기록이 없으면 임금을 받지 못한다. 일반 사무직의 출퇴근 관리 시스템과 유사하지만, 건설현장에서는 아직 보편화되지 않은 모습이다.

여기서 일하는 건설근로자는 전자카드제 덕분에 다른 현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한 달에 20% 정도 더 많은 임금을 받는다.

출퇴근 시간이 정확하게 찍히기 때문에 일당 방식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다른 건설현장과 달리 여기는 시간급제 방식으로 임금을 준다.

개별 근로자별로 일한 시간이 정확하게 나오기 때문에 하루 8시간씩 5일을 근무한 건설근로자에게는 주휴수당까지 지급된다. 주휴수당은 일주일에 소정의 근로시간을 채운 근로자에게 하루치의 유급휴가를 주는 제도이다. 각종 수당을 임금에 미리 산정하는 포괄임금제가 대부분인 건설현장에서는 별도의 주휴수당을 받기 어렵다.

 

   
전자카드 단말기는 출.퇴근 기록을하고 안면인식기로 본인을 확인하는 2단계 절차를 거친다/ 안윤수기자 ays77@



특히, 이곳은 건설근로자 표준근로계약서를 통해 시중노임단가 이상으로 기본임금이 책정돼 있어 다른 현장보다 기본임금 자체가 평균 1∼2만원 정도 더 높다.

이 현장에서 철골ㆍ거푸집 공종에서 일하는 임재철 씨는 “아침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5일만 일하면 하루를 쉴 수 있다”면서 “정해진 근로시간만 채우면 더 일을 안 해도 주휴수당을 받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임금을 시간급제로 주면서 건설현장의 고질적인 연장 근로가 사라졌다. 하루 8시간을 넘겨 일을 시키면 1.5배의 추가 수당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가급적 추가 근로를 시키지 않는다. 오후 4시에서 5시 사이에 대부분의 건설근로자가 퇴근한다.

무리한 작업이 사라지면서 건설현장의 안전사고 위험도 크게 줄었다. 안전사고는 무리한 작업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많은데 이곳은 하루 8시간 근로를 기준으로 작업계획을 세워 애초부터 무리한 작업이 없게 관리되고 있다.

시공사인 SM삼환기업의 홍진호 현장소장은 “연장근로를 시키면 비용부담이 엄청나게 커지기 때문에 콘크리트 타설과 같이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일부 공종을 제외하고는 연장근로가 없다”면서 “무리하게 작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안전사고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근로자 입장에서는 일하는 시간이 줄면서 임금은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셈이니 만족도나 높을 수밖에 없다.

반면, 건설사 입장에서는 공사를 진행하기에 다소 부담스러운 여건인 점은 분명하다.

개별 근로자들의 근로시간이 다른 현장보다 적다 보니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 현장 관리를 잘못하면 인건비 지출 부담이 대폭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여기에 합법 외국인력만 쓸 수 있기 때문에 다른 현장보다 사람 구하기는 더 어렵다. 불법 외국인력은 전자카드를 발급받을 수 없다.

이곳 현장의 외국인 근로자 비중은 30% 수준. 많게는 절반 이상이 외국인인 다른 아파트 건설현장에 비해 외국인 근로자 비중이 현저하게 낮다.

그렇다고 시공사가 손해를 보면서 공사를 하는 것은 아니다. 이곳의 공사 낙찰률은 다른 현장에 비해 월등히 높다.

 

   
현장의 건설근로자들은 현장 입구에 설치된 전자카드 부스에서 전자카드 등록 단계를 거처야 출입이 가능하다/  안윤수기자 ays77@



공사비가 388억원 수준인 이곳의 낙찰률은 90.3%로 비슷한 다른 건설현장의 낙찰률 75%보다 15%포인트 정도나 높다. 이 현장은 적정임금 지급을 위해 입찰단계에서 노무비를 입찰조건에서 제외했는데 이 때문에 낙찰률이 크게 올라갔다. 건설사들이 건설근로자의 인건비를 아껴 이윤을 내는 방식을 택할 수 없게 되면서 적정 이윤 확보를 위해 제살깎기식 경쟁에서 벗어났다는 평가다.

사업주는 높은 낙찰률로 적정공사비를 확보할 수 있게 됐고, 건설근로자는 개선된 근무 조건에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상생의 조건이 만들어진 셈이다.

문제는 발주자의 부담 증가다. 높아진 낙찰률은 결국 LH의 부담으로 연결된다.

김호건 LH 평택사업본부 소장은 “전자카드제와 적정임금제의 장점은 명확하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이견이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다만, 그 비용이 결국은 발주자 재정으로 충당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노무비도 입찰 단계에서 경쟁을 붙이는 방식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고민은 있다”라고 말했다.

 

권해석기자 haes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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