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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매화의 꿈
기사입력 2020-02-24 06:00:28.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다. 지난달 단톡방에 매화 소식이 들려왔다. 순천 금전산 금둔사 납월홍매였다. 섣달에 피고 한겨울 눈 속에서 피니 설중매다. 사진으로 만나는 홍매였지만 마음은 이미 봄을 만난 듯했다. 매화는 선비정신의 으뜸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 매화의 별칭이 청객(淸客: 맑은 손님), 청우(淸友: 맑은 벗), 빙옥처사(氷玉處士: 얼음과 옥처럼 맑은 처사) 등으로 불리니 사랑받을 이유는 차고 넘친다.

  선비들은 매화를 통해 호연지기를 꿈꾸고자 했다. 하나 그 꿈을 지켜가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던가. 어렵다. 이상과 현실은 언제나 보기 좋게 어긋나 꺾이고 부러진다. 이상과 현실은 때로는 외부의 힘 때문에 좌절되고, 때로는 자신의 부족함으로 좌절됨을 반복한다. 선비들은 자신의 불가능한 꿈을 매화에 담아 이루고자 했고 지키고자 했다. 어쩌면 선비에게 매화는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의 ‘불가능한 꿈’과 같은 것일 것이다. 현실에서는 어쩔 수 없이 리얼리스트로 살아가야겠지만, 가슴 속엔 불가능한 꿈을 꾸며 살아가자는 그의 말처럼, 매화는 선비들이 가슴 속에 담은 불가능한 꿈을 상징한다. 지금, 매화가 피고 있다.

  임미리 교수의 칼럼이 시끄럽다. 민주당은 졸렬하게 대응했다. 멍청했다. 도처에서 그 졸렬함을 성토한다. 상대편의 공격은 당연한 것이고, 같은 편의 꾸짖음이 더 신랄하다. 아프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신문에 난 ‘글 한 줄’에 이렇게 혼비백산하다니. 겨우 그 정도였던가. 실망이다.

  화를 멈추고 잠시만 생각해보자. 나는 정치인의 졸렬함, 오만함, 사악함 등을 모르고 있었나? 다 알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이 공익을 명분으로 떠벌이면서 사익을 위해 일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쯤은 충분히 알고 있지 않았던가? 그들은 완벽하지 않다. 또한 이상은 가상하나 실력이 제대로 따르지 못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또 우리에게 최선의 선택이었던가?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에게는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다. 차선이었다. 최악을 피하고자 했던 차악의 선택이었다. 그렇게 보면 이번 사고도 특별히 실망할 일은 아니다. 원래 그랬으니까.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여든 야든 아직도 그들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품고 있는가이다.

  어쩌면 ‘민주당은 빼고’라는 말에 그들은 속마음을 들켜 등골이 서늘해졌을지도 모른다. 당황하여 정신 줄을 놓아버려 자살골을 넣고 지금 망연자실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어이없는 사고의 출발점은 촛불의 후광으로 잡게 된 정권을 자신들의 실력으로 착각한 탓이다. 오만해졌고, 자신들만 정의라고 단단히 믿게 되었다. 그렇게 그들은 초심을 잃었다. 잊어버렸다. 잘못이 크다. 욕먹어 마땅하다.

  공자는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고 했다. 화이부동은 다른 사람과 생각이 다르지만 서로를 인정하며 조화롭게 지내는 것으로 한국판 톨레랑스다. 동이불화는 겉으로는 같은 생각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반목하는 것이다. 여든 야든 화이부동하면 서로 상생할 수 있다. 동이불화하면 애꿎은 국민만 힘들어진다.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정말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게 될 수도 있다. 같이 망한다. 아니, 지금 그 길로 가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누군가를 망하게 만들기는 쉽지만 잘되게 만들기는 어렵다. 누군가를 망하게 하는 데는 대놓고 훼방 놓으면 되고, 그냥 앞뒤 재지 않고 싸잡아 야단치면 되니 실력 따윈 필요 없다. 하지만 누군가를 잘되게 하려면 실력이 필요하다. 실력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어도 서로를 인정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정신도 필요하고, 믿음을 전제한 꾸준한 비판도 필요하다. 그것이 서로 사는 길이다. 상생은 진실로 상대를 존중해야 하고, 배제의 습관을 버려야 하며, 결과에 승복하는 실천의지도 있어야 가능하다. 또한 비판은 적절해야 하고, 합리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물론 대안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희망은 서로의 잘못을 수용할 때 품을 수 있다.

  알제리 독립전쟁 당시 프랑스의 지성 사르트르는 스스로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LN)의 독립자금 전달책으로까지 나섰던 사람이다. 이런 사르트르의 반역행위를 법적으로 제재해야 한다는 측근들에게 드골은 “그냥 놔두게, 그도 프랑스야!”라고 간단히 일축했다. 상대방을 인정하는 톨레랑스, 프랑스 지성, 프랑스 정치의 위대한 장면이다. 여든 야든 누구든 그런 진심의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는 것일까? 무엇이 불가능한가? 너희들은 아직도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품고 있지 않은가? 너희들 곁에는 아무리 야박한 점수를 주더라도 세계에서 가장 수준 높은 1등 민주시민이 있지 않은가. 매화는 피어버렸고, 봄이 코앞인데 참 난감하다.

김규철(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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