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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빨래 끝!
기사입력 2020-05-12 06:00:12.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TV 다큐프로에서 어떤 마을의 빨래터를 보여주고 있군요. 마을 앞에 흐르는 개울을 인위적으로 잘 정비한 빨래터에 할머니들 여럿이 앉아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네요. 누구는 방망이로 옷가지를 탕탕 두드리고, 누구는 물에 헹군 옷을 비틀어 짜고, 누구는 고된 시집살이 시절을 풀고, 또 누구는 ‘영감아 곶감아’ 노래를 부르며 미워도 미워할 수 없는 영감을 그리워하네요.

 지금은 시골에서조차 대부분 사라지고 없지만 빨래터는 집안에만 갇혀 지내던 여성들의 시끌시끌한 소통공간이었어요. 아침밥을 먹고 설거지를 끝내면 바로 해야 하는 일이 벗어 둔 식구들의 옷가지들을 모아 빨래터로 가는 것이지요. 그곳에서 만난 동네 아낙들과 수다를 떠는 일은 빨래뿐만 아니라 마음에 앉은 때까지 맑게 씻는 일이었으니까요.

 내가 태어나 살던 마을은 옆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앞 뒤 산 아래로는 개울이 흘러 강과 합류를 했어요. 고학년이 되고부터 내 옷은 내가 빨아 입었는데 빨래터에 가는 일은 소풍과 같았어요. 강과 양 개울 중 어느 쪽을 택하느냐는 그날 발길이 가는 대로지만 난 주로 마을 뒤 개울로 갔어요. 그곳은 돌들이 많아 물이 맑고 큰 소나무와 꿀밤나무 그늘이 참 좋았거든요.

 나는 지금도 수돗가에 빨래터를 만들어놓고 웬만한 것들은 손으로 빨아요. 성능 좋은 세탁기들이 많이 나와 버튼만 누르면 건조까지 다 되어 나오는 시대에 뭔 후진 얘기냐 하겠지만 손빨래는 어려운 세상을 건너는 것과 같다 할까요. 요즘 옷들은 성질이 까다로워 물의 온도며 세제 종류, 비비는 방법도 다 달리해야 하니까요.

 오늘도 손빨래를 했어요. 긴 겨울을 건너오는 동안 얼룩진 것들의 무늬나 흐릿한 색깔이 다시 처음처럼 선명하게 드러나네요. 이젠 뽀송뽀송 말리는 일만 남았어요. 옥상 빨랫줄에 식구들의 옷가지를 널어놓고, 삶아 빤 행주와 수건까지 탁탁 털어 널어놓고, 개운해진 마음까지 널어놓고, 빨래 끝! 어떤 광고처럼 두 팔 높이 들어 외쳐요.

 

권애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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