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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백 원짜리
기사입력 2020-05-14 06:00:24.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길바닥에 백 원짜리 동전 두 개가 햇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누가 여기에 귀한 세월 두 가닥을 잃어버리고 갔을까. 세상 풍파 다 겪은 듯 찌그러진 동전을 보니 한 가닥에 고작 백 원이었던 엄마의 머리카락이 떠올랐다.

 흰 머리카락을 하나씩 뽑아 개당 백 원씩 계산해서 받았더랬다. 엄마의 까만 머리카락은 세월을 판돈 삼아 흰 머리카락과 겨루고 있었다. 어린 딸은 엄마의 흰 머리카락이 하나씩 발견될 때마다 백 원을 계산하며 좋아했다. 흰 머리카락 한 가닥이 뽑히는 찰나에 철없는 딸내미는 웃었고 엄마는 씁쓸하게 한숨을 쉬었다.

 십 리 정승처럼 듬성듬성 보이던 엄마의 흰 머리카락이 해를 거듭할수록 제집인 양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그걸 다 뽑았다간 사람 잡을 일이었다. 예상 밖의 일은 엄마의 태도였는데, 언젠가부터 엄마는 흰 머리를 뽑아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세월의 하얀 그림자를 덤덤히 받아들였던 것일까. 그것이 체념이었는지 수용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동전 두 개를 손에 쥐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와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은색의 낡은 동전 두 개가 떨어져 나간 흰 머리카락처럼 궁색하게 뻗어 있다. 엄마가 잃어버린 젊음만큼 생기가 없다. 동전들을 손바닥으로 가만히 쓸어보았다. 이 낡은 동전에 어떤 사람들의 세월이 스쳐 갔을까. 가문 땅에 물이 잦아들듯 기세등등한 세월을 늙은 엄마도 나도 걷잡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제는 제때 염색하지 않으면 엄마의 머리엔 만년설이 쌓인다.

 백 원을 얻으려고 엄마의 머리카락을 헤집던 나는 백 원의 가치를 무시하는 나이가 되었고 엄마의 만년설보다 내 머리에 가끔 출현하는 새치 한 가닥이 더 신경 쓰이는 무심한 딸이 되었다. 누군가 떨어뜨린 백 원짜리 동전 두 개처럼 엄마의 인생은 오늘도 바닥에 뚝뚝 떨어졌을 것이다. 돈을 주고 살 수만 있다면 엄마가 떨어뜨린 인생 모두 사주고 싶은데, 이 허망한 바람은 불효자식이 내뱉는 자책일 뿐이라고 동전 두 개가 비웃듯 쳐다본다.

 

이은정(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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