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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 길을 묻다] 삶과 죽음, 그 거대한 담론
기사입력 2020-05-18 06:00:25.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어떻게 살 것인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던져보는 질문이다. 하지만 그 해답을 찾아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어려운 질문이라고 하여 마냥 포기하고 살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죽을 것인가?’로 질문을 바꾸어 보자. 삶도 알지 못하는데 죽음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어쩌면 어불성설(語不成說)로 여겨질 수도 있다. 죽음이란 두려움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가장 외면하고 싶은 대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에 대한 해답은 죽음을 통해 의외로 쉽게 찾을 수도 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산에서 죽고,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은 바다에서 죽는다’는 말이 있다. 산사람은 산에서 죽는 것을 단연코 두려워하지 않고, 바다사나이는 바다에서 맞이하는 죽음을 오히려 소망하기도 한다. <춘추좌씨전>에는 “자기가 즐기는 것 속에서 반드시 죽음을 맞이한다-所樂必卒焉(소락필졸언)”이라고 했으니 그 의미가 일맥상통한다. 즉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무엇을 즐기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실마리가 팔짱을 끼고 가부좌를 튼 채 앉아 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학이시습지) 不亦說乎(불역열호)”는 가장 잘 알려진 <논어>의 첫 구절이다. ‘학이’편에 나온다. 이 구절의 행간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해가 뜨고 지는 것도 모르고, 배고픔도 잊은 채 즐길 수 있는 것을 하게 되면 그것을 더욱 잘하기 위해 스스로 배우게 되어 있다. 그렇게 배움을 실천하면 익히게 되고, 익숙해지면 더욱 숙달되니 당연히 즐거울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다. ‘하면 할수록 더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면 된다. 여기에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이 포함된 성공이라는 화려한 노리개는 떼어내고, 개인만의 이익이 아닌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며, 사회적 가치와 의미를 담는다면 더 이상의 보석 같은 삶은 없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오류투성이라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채근담(菜根譚)>에 “기녀도 늘그막에 어진 남편을 따르면 한 평생의 연지분이 거리낄 것이 없고, 정숙한 부인도 머리가 희어 정조를 잃으면 반평생 절개가 허사가 된다”고 했다.

인생은 시작도 중요하고 과정도 중요하다. 하지만 끝이 좋아야 한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도 있으니, 죽음 이후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될지를 생각해 보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은 쉽게 구할 수 있다.

과거는 바꿀 수가 없다. 하지만 미래는 지금의 행동에 따라 충분히 바꿀 수 있다. 따라서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아라”라는 말을 실천한다면 ‘죽음’이라는 두려움도 어깨 위에 내려앉은 하얀 먼지처럼 툭툭 털어낼 수 있을 것이다.

 

송영대(행복경영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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