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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창] 책 땜장이(輔破冊匠)
기사입력 2020-05-20 06:00:16.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수필 공부를 하다 보니 책을 가까이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읽어도 펼치고 있을 때뿐 책장만 덮어도 무엇을 읽었는지 기억이 아슴아슴하다. 하지만 한 줄이라도 더 읽으려고 아등바등한다. 읽을 책은 대부분 서점에서 구하지만, 가끔은 내가 근무했던 대학의 도서관에서 빌려 보기도 한다. 대출받은 책을 펼쳐보면 한 번도 읽은 흔적 없이 깨끗한 것이 대부분이다. 머리가 맑은 대학생들이 지식의 보고에 가득 찬 보물을 외면하는 세태가 걱정스럽다. 젊을 때 읽은 책은 평생토록 기억에 남는다던데….

  기형도 시인의 책을 읽다가, 그 속에 언급된 장정일 시인이 궁금했다. 그가 쓴 책을 여러 권 대출했다. 책마다 외장도 많이 낡았거니와 읽은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연필로 밑줄을 그어 놓았는가 하면, 꺾쇠(「 」)표도 많았다. 책장 모서리가 접혀 있거나, 접었다 편 흔적도 여러 군데였다. 뒤표지 부분을 펼치니 책장 서너 장이 그대로 흘러내리기조차 했다.

  책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탓하기 전에 미소가 슬그머니 입가에 번졌다. 숙제하느라 그었을 밑줄이나 여백에 써 놓은 흔적이 옛 친구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한 번도 펼친 적 없는 책을 손에 들고 아쉬워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오히려 대견했다.

  요즘은 개인정보 노출 때문에 없어졌지만, 오래전에는 도서관 소장 도서의 뒤표지 안쪽에 독서 카드가 부착되어 있어 누가 언제 책을 읽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학생들이 어렵사리 연락한 끝에 잔디밭이나 벤치에 모여서 독서 토론을 하는 낭만도 있었다. 오늘날 SNS(Social Network Service)의 오프라인 버전이라 할 수 있겠다.

  떨어져 나간 낱장을 풀로 붙이고, 손상된 표지는 깨끗하게 정리한다. 연필로 밑줄 친 부분도 지우개로 깨끗하게 지운다. 한참 수고를 한 끝에 말끔하게 변신한 책을 들고 요모조모 살펴보는 마음이 기껍다. 앞으로도 구멍 난 냄비나 검정 고무신을 때우듯이 떨어진 책을 손질하는 책 땜장이(輔破冊匠)의 즐거운 수고가 많았으면 좋겠다. ※보파책장(輔破冊匠)은 유득공 산문선 ‘누가 알아주랴’의 輔破詩匠에서 차용

조이섭(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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