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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 길을 묻다] 모난 돌의 반란
기사입력 2020-05-25 06:00:33.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있다. 이 말에는 튀지 말고 그저 남들 사는 대로 평범하게 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는 ‘무사안일’, ‘복지부동’을 삶의 모토로 하는 삶이라 할 수 있다.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의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재능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를 재해석하면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한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한(漢)나라 때 재상을 지냈던 진평(陳平)은 한왕(漢王)을 도와 많은 공을 세웠다. 진평이 젊었을 때 집은 가난했다. 하지만 진평은 집안을 살피지도 않고 농사 일도 돌보지 않았다. 단지 책 읽기만을 즐겼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듯 진평에게도 볕드는 날이 찾아 왔으니, <사기> ‘진승상세가’에 그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진평이 성장하여 아내를 맞이할 때가 되었는데, 부자들은 그에게 딸을 주려 하지 않았고, 가난한 집 여자를 얻는 것은 진평 또한 부끄럽게 여겼다. 한참 뒤, 호유현의 부자 장부(張負)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손녀딸은 다섯 번이나 시집을 갔으나 남편이 갑자기 죽어 아무도 그녀에게 더는 장가를 들려 하지 않았다. 진평은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려고 했다. 그 당시 마을에 상을 당한 사람이 있었다. 진평은 가난하여 먼저 가서 늦게 돌아오는 방법으로 상가 일을 도왔다. 장부가 상가에서 진평을 보고는 유독 돋보이는 그의 외모를 주시하였다. 진평 또한 장부에게 잘 보이려고 늦게 상가를 떠났다. 장부가 진평을 따라 그의 집으로 가 보니, 그의 집은 성곽을 등진 막다른 골목에 있었고, 해진 자리로 문을 만들어 놓았는데 문 밖에는 수레바퀴 자국이 많이 있었다. 장부가 집으로 돌아와 그의 아들 장중(張仲)에게 일러 말했다. “나는 손녀를 진평에게 주려고 한다.” 장중이 말했다. “진평은 집이 가난한데도 생업에 종사하지 않아 온 고을 사람들이 모두 그가 하는 것을 비웃고 있는데, 어찌하여 딸을 그에게 주려고 하십니까?” 장부가 말했다. “사람 가운데 진실로 진평처럼 외모가 빼어난데도 끝까지 가난하고 미천하게 지내겠는가?” 마침내 손녀딸을 주었다. 진평이 가난하였으므로 장부는 그에게 폐백감을 빌려 주어 빙례(聘禮)를 하게 하였고, 술과 고기를 살 수 있는 돈도 주어 아내를 맞이하게 했다. 진평은 장씨의 손녀에게 장가든 후 쓸 재물이 나날이 넉넉해졌고, 교류하는 것도 날로 넓어졌다.

공자(孔子)는 “얼룩소 새끼라도 털이 붉고 뿔이 번듯하다면 비록 제물로 쓰지 않으려 한들 산천의 신이 그것을 내버려 두겠는가?”라고 했고, 한양대 유영만 교수는 “정상(頂上)에 오른 사람은 정상(正常)이 아닌 비정상인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모난 돌의 삶은 때때로 뭇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조롱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세상을 손에 넣고 쥐락펴락하는 것은 모난 돌이다.

 

송영대(행복경영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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