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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ㆍ감리ㆍ진단 용역비 ‘쥐어짜기’, 국민안전 ‘골병’…“디자인이 ‘갑’ 안전은 ‘을’”
기사입력 2020-06-29 05:00:14. 폰트 폰트확대폰트축소
[기획]삼풍백화점 붕괴 25주기…대한민국은 안전합니까



1989년 문을 연 삼풍백화점은 단일 매장으로는 당시 전국 2위 규모였다. 최고가 삼풍아파트 앞에 들어서면서 단숨에 강남권 고급 백화점의 대명사가 됐다.

하지만 강남권 핫플레이스는 5년여 만에 처참하게 무너졌다. 더구나 이 사고는 성수대교가 무너져내린 지 불과 8개월여 만에 발생해 한국사회에 더 큰 충격을 안겨 줬다.

  붕괴사고는 부실과 부패의 합작품이었다. 건물 설계부터 시공, 감리, 유지관리까지 모조리 부실했다. 총체적 부실의 뒷배는 부패였다. 부실 공사는 뇌물로 덮어졌고, 무리한 설계변경은 뒷돈으로 승인됐다. 엔지니어들과 관련 공무원들도 떡값을 받아챙겼다. 당시 사고와 관련해 업무상과실치사ㆍ뇌물수수ㆍ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기소된 사람만 25명이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세계적으로도 대형 건축물 사고의 인명피해 부문 상위 3위(2015년 기준)라는 불명예 기록으로 남아 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우리사회의 안전망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시공 과정을 감독하는 책임감리제(현 건설사업관리)가 도입됐고, 주요 시설물에 대한 안전점검을 의무화한 시특법(시설물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됐다. 심령술ㆍ역술가와 초능력자까지 동원해 붕괴 현장에서 생존자를 찾아야 했던 비극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중앙119구조대(현 119 안전신고센터)가 탄생했다.

  오늘(29일)은 삼풍 참사 25주기다. 어느덧 사반세기가 흘렀지만 지금도 건축물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다. 일부 건축현장에선 여전히 설계대로 시공하지 않거나 시공 공법을 지키지 않는 부실 시공이 빈번하다. 40여 명의 인명피해를 낸 지난 4월 이천 물류센터 화재사고 역시 각종 안전기준을 무시한 대가였다. ‘우리 안의 삼풍백화점’이 여전히 너무 많다.

  전문가들은 삼풍의 교훈을 제도 개선에 담아내야 한다고 주문한다. 무엇보다 부실 설계ㆍ시공을 부추기는 박한 설계ㆍ감리ㆍ진단 용역비의 현실화가 시급하다. 업계 관계자는 “적정 대가를 주지 않고 책임만 지우는 비상식적인 용역 발주는 설계-시공-유지관리의 총체적인 부실을 초래하는 불씨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허점투성이 제도도 건축물 안전을 위협하는 공공의 적이다. 대형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안전 관련 규정이 매번 추가되지만 근본적으로 구조안전 전문가의 활용도가 너무 낮다. 건축물 안전을 확보하려면 건축법과 건축사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정란 단국대 건축공학과 석좌교수(초고층빌딩 글로벌 R&BD센터장)는 “국내 건축법은 건축 각 분야의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고 디자인 전문가인 건축사가 구조안전을 포함한 모든 건축설계를 독점하도록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건축사가 구조안전설계 전문가인 구조기술사에게 하청을 주면서 디자인이 ‘갑’이고 안전이 ‘을’이 되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건설현장 사고도 줄여야 한다. 지난해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 855명 중 절반이 건설업(428명, 50.1%) 종사자였다. 사고 원인은 추락, 넘어짐, 부딪침, 끼임, 절단 등으로 다양하다. 2015년 건설업 사고사망만인율은 1.65명으로 영국(0.16명), 싱가포르(0.31명)보다 5~10배 많다. 사고사망만인율은 상시 근로자 1만명당 사고사망자 수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4월 ‘건설안전 혁신방안’을 내놓고 올해 건설현장 사고사망자를 360명대로, 2022년에는 250명대까지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지자체와 발주자의 안전관리 책임 권한을 대폭 강화하고, 감리자의 현장 상주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건설 중장비에 대한 감시도 강화해 타워크레인 설치ㆍ해체 시 외부 점검기관의 정기 안전점검을 받도록 했다. 특히, 기존 건설기술진흥법에 담긴 안전 관련 규정을 따로 빼서 규제 중심의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을 추진할 예정이다.

  한 원로 건축공학자는 “각종 사고 때마다 면피용 규제 대책만 쏟아내선 실효성이 없다”며 “건축물과 건설현장의 안전을 제대로 확보하려면 이제는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안전 싸움’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삼풍백화점은 1999년 1월30일 완전 철거됐다. 삼풍사고 희생자 위령탑은 서초구 양재동 시민의숲 공원 내에 있다.

김태형기자 k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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