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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건축견적 이야기’ 펴낸 현동명 ㈜컨코스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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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8-31 05:00:11   폰트크기 변경      
30년 쌓아온 ‘건축견적’ 인생 담아…‘원가전문가’ 양성에 힘 쏟고파

 



  

 어떤 책은 작가의 인생사를 통째로 버무려 빚은, 맛깔나는 음식 같다. 서점에 건축 견적 실무서가 넘쳐난다. 하지만 꼼꼼히 따져보면 ‘실무서’란 이름과 달리 건설현장에서 실제 쓸 수 있는 책은 별로 없다. 최근 출간한 <현장기술자를 위한 건축견적 이야기>는 이름 그대로 현장기술자용 건축 견적 실무서다. 저자는 자타가 공인하는 ‘건설원가 30년 경험의 선배’ 현동명(53ㆍ사진) 컨코스트 대표. 그는 전 6권, 총 22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시리즈에 그의 적산ㆍ견적 30년사를 담았다.

 

 

   

 

◇공병장교와 쌍용건설, 그리고 영락교회

 학군장교 출신(ROTC 28기)으로 육군 기갑여단 공병장교를 지낸 것이 현동명 대표의 인생을 바꿔놨다. 홍익대 건축학과(86학번)를 다닐 때만 해도 건축 디자인(설계)이 건설의 전부라고 생각했지만 공병장교는 설계보다 시공이 주 업무였다. 여단 매점(PX) 보수공사를 시작으로 훈련용 교량ㆍ철도 신설, 부대 아파트 신축공사 등 2년3개월간 다양한 현장을 경험했다. 부대 밖에선 노태우 정부의 주택 200만호 정책에 따라 분당, 일산, 평촌 등 5개 신도시 건설이 한창이었다. 제대 직후 건설사 10곳에 원서를 냈고 7군데서 합격통보를 받았다. 그는 회사 이름값보다 성장성을 보고 쌍용건설에 베팅했다.

 신입사원에게 부서 선택의 기회가 왔다. 공무부, 건축부, 연구개발부 등을 마다하고 견적부를 지원했다. “공무부나 건축부가 인기 좋고 폼도 나지만 선배들 ‘시다바리(보조원)’보다 내가 직접 일을 하고 싶었다”는 게 이유다. 견적부는 그의 기대(?) 대로 일이 차고 넘쳤다. 발주 물량이 많던 시절이라 견적부원들은 밥먹듯이 야근했다.

 도면에서 수량을 뽑고(적산), 내역서를 검토해 공사비를 산출(견적)하면서 2년여를 보냈다. 그 때 회사가 ‘영락교회 50주년 기념관’ 건설사업을 땄다. 독실한 크리스찬인 현 대표는 “건축밥 먹는 사람으로서 미래 세대에 기념이 될만한 교회 건축물을 꼭 짓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념관 건설현장은 당시 ‘쌍용건설 3대 공무과장’으로 불렸던 김광만 소장(현 바로건설기술 대표)이 책임자였다. 집요한 구애 끝에 1993년 4월 현장 공무 실무자로 배치됐다. 하지만 신혼생활과 득녀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을 만큼 고된 업무가 이어졌다.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는 이 기념관은 거대한 필로티를 활용해 모든 방향으로 진입이 가능하도록 ‘열린 교회’의 개념을 구현했다. 현 대표는 “까다로운 건축 디자인을 구현하고 높은 실행률을 개선하기 위해 설계, 공법 변경이 잦아 일이 끝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착공 4년여만인 1997년 11월 2일 영락교회 50주년 기념관이 개관했다. 42개월 간 매일 지하철 막차를 타고 퇴근한 결과물이었다. 그는 “힘들었지만 건축현장의 A∼Z를 제대로 배웠다”고 말했다.

 ◇IMF 실직 후 쓴 ‘건축시공 이야기’

 축배의 샴페인은 유효기간이 너무 짧았다. 다음 행선지는 인도네시아. 국내 현장보다 급여가 배 가까이 많고, 주택보조금까지 지원하는 해외건설 현장이었다. 가족과 함께 오붓하게 지내기 위해 생각해낸 히든 카드였다. 1997년 12월 인도네시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하지만 한국에선 야속하게 국가 부도, 외환위기(IMF)가 닥쳤다. 외환위기는 인도네시아 현장까지 강타했다. 해당 프로젝트가 중단됐고, 회사는 워크아웃에 돌입했다. 졸지에 이산가족이 된 채 홀로 싱가포르 건설현장으로 일터를 옮겼다. 본사 지원이 끊긴 가운데 아침 6시에 출근해 밤 10∼11시, 늦으면 새벽 1시에 퇴근하는 고행이 8개월간 계속됐다. 결국 1998년 11월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한국에 오자, 김광만 소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영락교회 50주년 기념관 건설현장의 경험을 책으로 써보자는 제안이었다. 당시 김 소장과 함께 펴낸 책이 <튼튼하고 아름다운 건축시공 이야기>다. 자비 출판이었지만 대학 교재로 쓰일 만큼 지금도 꾸준히 팔린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9년 첫 건축 견적회사를 차렸다. 그로부터 20여년간 국내 3000여건, 해외 300여건, 미군기지(FEDㆍ극동공병단) 공사, 건설 클레임 100여건 등을 두루 경험하며 국내 건축 수량산출 및 내역서 작성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했다. 2018년에는 주52시간제 시행과 최저임금 인상 등을 피해 베트남에 지사를 만들었다. 공사개요와 도면만으로 정확한 건축공사비를 산출할 수 있는 ‘개산 견적시스템’, 캐드(CAD) 도면상에 시각적으로 수량산출 결과를 확인시켜주는 ‘현장 물량검증시스템’ 등 기술혁신도 이끌었다. 유튜브에선 건축 수량산출과 내역서 작성 실습교육인 ‘공사비닷컴’을 운영 중이다. 그 동안 축적된 공사비 빅데이터로 건물 용도와 층고, 외장ㆍ마감재 등 옵션만 입력하면 인공지능(AI) 시스템이 공사비를 뽑아주는 플랫폼도 준비 중이다. 

 

   

 

 ◇“원가 계산은 설계도면과 시공의 가교 역할”

 현 대표는 “건설산업이 발전하려면 사업 초기부터 공사비만 전문적으로 작성하고 검토ㆍ관리하는 원가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건물의 안전과 품질을 보장하기 위한 감리제도처럼, 초기 사업예산 수립과 집행, 정산을 책임져 줄 전문가가 있어야 국민 세금을 아끼고 일자리도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도 영국의 QS(Quantity Surveyor), 미국의 CCE(Certified Cost Engineer)에 해당하는 민간자격제도가 있다. 대한건설협회가 주관하는 건설원가관리사(KQS)는 건설공사 사업비와 부수적 비용을 전문적으로 산정ㆍ분석하는 전문가다. 선진국에선 단순한 원가관리를 넘어 발주자의 건설사업 대리인으로서 사업 예산을 짜고, 예산에 맞게 설계가 이뤄지도록 관리하며, 설계ㆍ시공사를 선정하고 이후 분쟁 관리까지 두루 맡는다. 그가 <건축 견적 이야기>를 쓴 것도 원가 전문가 양성이 목적이다. 시공사의 현장기술자 외에도 건축현장의 공사비 시스템을 알아야 하는 설계자, 감리자, 건축주 등을 위해서도 썼다.

 추천사를 쓴 전상훈 건축기술인회장은 “원가계산은 단순한 물량 산출에 의한 견적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설계도면과 건설현장 시공의 가교 역할을 하는 것으로 건설사업의 과업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핵심 요소”라고 강조했다.

 현 대표는 높은 파고가 몰아칠 때마다 인생항로가 흔들리지 않게 키를 더 바짝 쥐었다. 건설원가 30년 전문가와, 그의 책이 세상과 조우할 수 있었던 평범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성공 비결이다.

 글=김태형기자kth@ 사진=안윤수기자ays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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